“교회 위기지만, 오히려 본질 가깝게 갈 수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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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위기지만, 오히려 본질 가깝게 갈 수 있는 기회”
  • 박동현 기자/이대웅 기자
  • 승인 2021.02.16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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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말하는 ‘코로나19 이후 교회 공간’ (上)
모였을 때 강해지는 시스템이나 공동체 의식은 약해질 것
모일 수 있는 숫자 줄면 교회라는 공간 개념도 달라질 것
사회 점점 개방, 교회 제자리걸음… 보수적 공간 돼 버려
-종교시설에서 코로나19 감염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현준 교수는 책에서 “빈 공간(void)은 빛보다도 먼저 존재한다”며 창세기 1장 2-3절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KJV)…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현대 과학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송경호 기자

크리스천투데이는 2년째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 사태를 맞아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교회에 미칠 영향과 대응 방안, 향후 전망 등을 청취하고 있다. 이번에는 ‘알쓸신잡2(알고 보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tvN)’를 비롯해 ‘나의 판타집(SBS)’ 등에서 통통 튀는 발상을 보여주며 시청자들과 친숙해진 건축가 유현준 교수(홍익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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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교수는 건축을 ‘쌓아올리는 것’ 자체보다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인간의 건축 행위는 일차적으로는 물체를 만드는 것이지만, 최종 목적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공간이 만든 공간>, 32쪽)”이고, “인간은 건축물이라는 물체를 만들고, 그 물체가 만든 빈 공간을 인간이 사용한다(34쪽).”

유 교수는 최근 저서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지리와 기후 등 환경적 제약이 동서양 문화와 인류 문명, 건축물에 끼친 영향을 종횡무진하며 독창적 시각으로 탐구하기도 했다.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이 10-20%로 줄어드는 등 교회의 ‘공간’에 대한 담론이 어느 때보다도 무성해진 2021년, 그의 생각을 주목하는 이유다.

그는 이 책 결론 부분에서 “앞으로 사회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하고 인간다움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의 주장에 모두 동의할 순 없더라도, 그의 통찰은 한 번쯤 생각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지난달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그의 회의실에서 만난 유현준 교수. 그는 책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빈 공간이 구축되는 형식과 모양을 보면, 만든 사람의 생각과 문화를 비추어 볼 수 있다”며 “따라서 그 공간을 분석하고 이해하면 사람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경호 기자

“아무래도 모이면 전염병에 노출될 위험성이 높아지겠죠. 그래서 예배 중심의 종교인 기독교와 전염병은 상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진짜 힘이 모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모이기에 힘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였을 때 파워가 생기고, 공동체 의식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시공간을 많이 공유할 때 공동체 의식이 강해집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 한 방향을 바라볼 때,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되거든요.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목회자입니다.

실내 예배당은 공간 자체가 외부와 차단돼 있습니다. 사람들이 밖을 볼 수 없는 창문 없이 몇천 명이 집중해서 모두 앞을 바라보게 되면, 마치 아이돌처럼 엄청난 파워를 갖게 됩니다.”

-그럼 코로나 이후 교회는 그 파워가 줄어들까요.

“그렇습니다. 파워보다 시스템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교회는 지난 2천년간 공간을 통해 시스템이 구축되고 차곡차곡 쌓아 왔습니다. 윈도우 프로그램 패치하듯 그렇게 업그레이드해 왔는데, 이제는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성도들은 매일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자신이 듣고 싶은 말씀을 시간의 제약 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전에도 우리는 인터넷의 도움으로 다른 교회 목사님 말씀을 듣기도 하고, 기독교 방송으로 보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들은 기독교의 본질에 가깝습니다. 기독교에게는 언어로 전파되기 쉬운 경전이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같은 장소에 모이게 하는 예배라는 형식이 합쳐졌습니다. 하지만 이 예전이라는 형식은 말씀이라는 본질과 분리가 가능합니다. 같은 장소에 있지 않더라도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교 같은 경우 유목민이라 한 장소에 모일 수 없다 보니, 시간을 정해놓고 메카를 향해 기도하게 합니다. 이렇듯 원격으로도 말씀의 본질은 충분히 전파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모여서 만들어지는 공간 시스템을 통해 구축됐던 권력 시스템이나 공동체 의식은 약해지겠죠.”

-온라인 예배를 드려보니, 자세도 흐트러지고 집중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생각해볼 때인 것 같아요. 함께 모여 거룩한 분위기에서 거룩한 성가를 들으며 거룩한 옷을 입고 계신 분이 하는 말씀을 듣다가, 이제 모든 형식이 배제된 상황입니다. 그랬을 때 정말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이제 그야말로 진검승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교회 공간은 예배드리는 거룩한 공간으로 구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 모일 수 있는 숫자가 줄어들면 오히려 교회 공간을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문턱을 낮춰서, 믿는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도 열려야 하지 않을까요.”

-온라인 예배로 교회에서 더 이상 대형 예배당이 필요한가 논의가 무성합니다. 하지만 방역당국이 ‘좌석 수 10-20% 참석’ 등의 제한을 가하면서, 공간이 넓을수록 예배 참석 인원이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역설적 상황인데, 코로나 이후 교회 건축의 대형화 경향은 어떻게 될까요.

“보통 상업시설을 예로 들어 생각해 봅시다. 연면적의 10%만, 수용인원의 10%만 모이게 한다면, 10%의 인원만으로 나머지 90%의 공간을 유지하려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가 크니까 10%가 많아져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상업은 아마존닷컴이 거의 독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쿠팡이나 배달의 민족이고요. 완전히 디지털화된 기업들만 살아남고 있습니다.

비슷한 현상들이 기독교와 교회에서도 나타날 것 같아요. 디지털에 성공한 사람들과 교회들은 오히려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예배마다 한 번에 수만 명씩 접속하는 경우가 디지털화에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 본질이 강한 교회가 살아남는다는 말씀이시지요.

“제가 우려하는 바는 ‘말씀이 좋다’는 것의 정의입니다. 정말 말씀이 좋을 수도 있지만, 지금 정치적 상황에서 보듯 극단적인 사람에게 쏠리는 경향도 있기 때문입니다. 잘 모르지만, 종교원리주의 등으로 쏠릴 수도 있다고 봐요.

SNS나 유튜브를 통해 사람을 모았을 때는 그런 위험도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 교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교회 건축도 사회적 환경에 따라 바뀌어 왔다고 하셨는데, 그 과정을 역사적으로 간단히 설명해 주신다면.

“공간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는 1970년대에 가장 급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고밀화와 도시화가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 난방 시스템은 온돌이어서, 단층짜리 집뿐이었고 모여서 살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보일러가 들어와 2층짜리 양옥집이 지어졌고, 엘리베이터가 들어와 12층짜리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점점 고밀화됐습니다. 그러면서 상가가 생겼어요.

과거 상업 행위는 시장에서 이뤄졌고, 조선 시대에는 사람이 적었기에 5일에 한 번 장이 생기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후 도시화 초창기에는 동네 어귀에 시장이 있었죠.

그런데 아파트가 생기면서, 상가가 시장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업 시설이 한쪽으로 집중되면서 빈 공간, 상가 위 3-4층 임대료가 저렴한 공간에 교회가 들어간 것이 대한민국 종교역사의 혁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산 속에 있잖습니까. 교통도 불편하던 시대에, 불공 드리러 가려면 1년에 한두 번 정도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활공간, 매일 장을 보러가야 하는 상가에 교회가 들어간 것은 일상생활 공간에 종교 공간이 들어왔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마트에 교회가 들어가 있는 수준입니다.

창업(개척) 문턱도 낮았습니다. 신학교를 나오면, 상가 보증금만으로 교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무한경쟁을 통해 말씀이 좋고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이 성장했는데, 배후에는 엄청난 인구 밀도를 가진 대단지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이점은 남녀공학이 없던 시절이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시대 젊은 세대들에게 남녀공학 이전에 이성교제를 할 수 있는 ‘연애의 해방구’였습니다. 기독교가 들어온 미국의 이미지도 좋았습니다. 승전국가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그 나라의 종교라는 이점도 있었고, 선교사님들도 영어를 잘 하시고 병원을 짓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하셨죠.

교회는 이 외에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돕는 등 여러 긍정적인 면들과, 고밀화된 도시 환경에서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종교시설이었습니다. 그렇게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현 상태에서 이것들이 다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공간적 여건들이 불교를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1주일에 한 번씩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다른 성도들과 1년에 52회나 목사님을 보는 거예요. 그러면 그 분의 권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죠. 불교는 1년에 한두 번 가고, 시간도 지킬 필요가 없고, 혼자 불공을 드립니다. 종교 지도자로만 보면, 권력 차이가 52배 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시도 때도 없이 모였기 때문에, 집중화가 더 잘 됐죠. 목회자에 대한 권력 집중은 폐단도 있었지만, 건전한 경쟁 생태계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이는 실리콘밸리와도 비슷합니다. 차고에서 쉽게 창업한 뒤 우수한 기술과 능력을 가진 이들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듯, 교회도 마찬가지 과정이 있었다고 봐요.”

-그렇다면, 교회의 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요.

“저는 학교가 남녀공학이 되면서부터라고 봐요. 남녀공학이 되면서 교회만의 메리트(장점)가 사라졌죠. 사회는 점점 개방되는데 교회는 제자리걸음을 하다 보니, 사회와 비교해 뒤떨어지고 보수적인 공간이 되어갔습니다.

과거에는 목사님 말씀이 유일한 교육기관 역할을 했습니다. 신학과 인문학적 지식을 교회에서 배웠는데, 지금은 배움의 자리가 많아졌습니다. 여러 인문학 강좌도 있고, 하다못해 예능에도 인문학 강좌가 너무 많아졌죠.

과거 1970년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해 한국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복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시인하면 복을 받을 수 있다, ‘4차원의 영성, 오중복음 삼중축복’ 이런 것들이 통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그 역할을 경제 유튜버들이 대체하고 있지 않습니까. 돈 버는 것은 경제 유튜버들에게 다 뺏기고, 인문학적인 것은 예능 프로에 다 뺏기니 콘텐츠가 점점 약해진 것입니다.

저는 성령과 신앙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바깥에서 보는 시각으로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다 빠져나가면, 교회의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죠. 남는 것은 순수한 믿음을 가진 분들이나 이성교제에 관심없는 나이 드신 분들, 가족 외의 공동체나 소속감을 원하는 분들일 것입니다.

비록 지금이 위기이지만, 오히려 본질에 가깝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70-80년대 항상 들었던 말은 ‘한국교회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엄청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었기 때문에 부흥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성령의 기름부음과 하나님 주신 축복이 아파트와 산업화와 도시화였고, 이를 통해 부흥했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처럼 세상적 조건이 맞아져서 부흥했을 수도 있지만, 이제 그런 것들이 없어지면 그 신앙이 진짜냐 아니냐 판명이 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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