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역사의 아이러니가 주는 도전. 신성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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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역사의 아이러니가 주는 도전. 신성욱 교수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1.02.17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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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따라 다닌 어두운 그림자들과 그의 악한 삶과는 대조적으로, 모든 삶을 은혜와 사랑으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하여 남은 생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멋진 삶으로 장식해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독일 총통으로 2차 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는 원래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암에서 태어났다.
독일 총통으로 2차 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는 원래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암에서 태어났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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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찬양을 잘해서 교회 성가대원으로 봉사했다. 그림을 잘 그려 화가로서의 재능도 엿보였다. 웅변실력이 특출해서 주목을 끌었다. 애국심이 많아 군대에 두 번이나 입대해서 봉사했다. 군대서 군인들이 발길로 차서 도망 다니던 상처입은 개를 끌어안고 울며 치료해주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까 아니면 정반대의 사람이 되었을까?

이 정도 재능이라면 화가가 되었거나 아니면 목사가 되었을 가능성이 많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이 누구일까? 그가 바로 수많은 유태인을 처참하게 학살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악마, 독재자, 살인마 등으로 불린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이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다른 이도 아닌 유태인들을 6백만 명이나 학살했을까? 왜 그리 유태인들을 증오했을까? 그 이유가 뭔지는 지금도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 내가 아는 지식으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유는 히틀러 모친이 유태인 의사의 실수로 죽었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심지어 그 의사가 유방암 환자인 히틀러 모친을 성폭행까지 했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히틀러가 빈(비엔나)에서 미술학교에 다닐 때, 짝사랑한 독일 여자가 나중에 돈 많은 유태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보고 격분, 유태인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이 부자가 되면 독일 여성과 결혼하여 아리안(독일 민족)의 피를 흐려놓기 때문에 히틀러가 유태인 멸종을 기획했다는 설도 있다. 물론 이런 개인 감정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두 번째 이유는 경제적,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히틀러는 유태인 때문에 1차 세계대전(1914-1918) 후 독일 경제가 붕괴했고 또 유태인들이 러시아 공산혁명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1차 세계대전에 하사관으로 참전한 히틀러는 패전 독일 경제를 재건하는데 유태인들이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해를 끼쳤다고 보았다.

종전 직후인 1919년 당시 독일의 민간은행의 약 절반이 유태인 소유였으며, 증권시장도 유태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 신문의 약 절반이 유태인 소유였으며, 연쇄백화점의 80%도 유태인 소유였다. 한마디로 독일 경제와 언론은 유태인이 좌지우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독일의 패전을 유태인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팽배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다. 모친 마리아 품에 평화롭게 안겨있는 아기 예수의 모습(아래 그림)을 그릴 정도로 히틀러는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던 가톨릭 신자였다. 그런데 그렇게 존경하고 신봉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다름 아닌 유태인으로 인해 죽었기 때문이었다.

히틀러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아기예수와 마리아

사람이 어떤 일을 벌일 때는 반드시 하나의 이유만으로 행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들이 쌓여서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히틀러의 경우도 그렇다고 보면 된다. 히틀러와 관련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유태인과 상관없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히틀러의 대학낙방 사건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 미술학과에 지원을 하지만 두 번이나 낙방을 하고 만다. 28명을 뽑는 데 115명이 지원했으니 3:1이 넘는 경쟁률이었다. 만일 그 때 그를 면접 보던 교수들이 장차 일어날 제2차 세계대전을 미리 내다보고 그를 합격시켜줬더라면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고두고 아쉬운 순간이다.

다음은 히틀러를 1차 대전 때 사살할 수 있었는데 놔주어 2차 대전을 일으키는 악마가 되게 한 한 영국군 병사의 이야기다. 만일 그때 그가 히틀러를 사살했다면 9400만 명이나 되는 소중한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를 낸 2차 대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군 병사 헨리 탠디(Henry Tandy, 아래 사진)는 프랑스 전장에서 부상당한 독일군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부상당했음을 알고 총을 내려놓고 보내주었다. 그때 그 부상당한 독일군이 나중에 보니 히틀러였다는 것이다.

영국군 병사 헨리 탠디(Henry Tandy, <br>
영국군 병사 헨리 탠디(Henry Tandy, 

두 가지 더 소개한다.

당시 영국군 한 사람이 독일 병사 한 사람을 포로로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한 눈 파는 사이에 그 포로가 도망치고 말았다. 나중에 악명 높은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가 바로 당시 한 눈 팔다가 놓쳐버린 그때 그 독일군 포로 히틀러였다는 것이다.

만일 그때 그만이라도 한 눈 팔지 않고 포로를 사살하거나 잘 지켜서 감옥에 보냈다면 희대의 악마요 독재자인 히틀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아니겠는가.

하나 더 남았다.

투표 시에 한 표 차이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뀐 해외의 사례들이 많이 있다. 그 중 하나가 1923년 히틀러가 나치당 총수로 선출된 사건이다. 그 때 그가 총수가 된 것은 단 한 표 차이였다. 딱 한 표가 히틀러를 외면했더라면 악인 히틀러의 이름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아쉽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선하고 유익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재능도 있었지만 운명의 신은 모두 그를 비껴갔고, 악한 영향을 멈출 수 있게 하는 운명 또한 그를 다 비껴가고 말았다. 이 얼마나 기괴한 역사의 아이러니란 말인가!

필자 신성욱 교수 
필자 신성욱 교수 

오늘 나는 어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는가? 이보다 더 큰 감사와 기쁨은 없다.

히틀러를 따라 다닌 어두운 그림자들과 그의 악한 삶과는 대조적으로, 모든 삶을 은혜와 사랑으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하여 남은 생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멋진 삶으로 장식해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이다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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