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문학상에 최재원…'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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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문학상에 최재원…'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1.11.11 0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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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트라우마 연구소에서 뇌의 점탄성을 연구했는데, 해마의 각 부위를 나노미터씩 찔러보고, 얼마나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는지를 재는 실험이었습니다. 물리와 수학, 그리고 생소하던 생물이 적절히 섞여 있던 일이었습니다. 몸과 더 가까워진 와중에 저의 뇌에는 이런 상(image)들이 성기게 피어났습니다.
최재원 시인© 뉴스1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최재원 시인의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외 59편이 제40회 김수영문학상에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이수명·조강석·허연)은 "내용과 형식에서 거침없고 자유로웠던 김수영의 첨단의 언어를 계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최재원은 1988년생이며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물리학과 시각예술을, 럿거스대 메이슨 그로스 예술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그는 2019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최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언어가 꼭 말은 아니었다"며 "나는 어떤 한 언어로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수상 시집은 연내 출간될 예정이며 상금 1000만원이 수여된다.
다음은 수상 소감 전문이다.

공전하는 궤도가 자꾸 바뀌고 있습니다. 돌아서 왔다, 고 쓰려고 했는데 도착한 곳에도 몸이 없네요. 저는 같은 곳도 다른 길로는 잘 도달하지 못하는데. 언어는 미로라고 했다죠? 한 번 떠난 말, 말을 말한 몸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 저를 절망하게 했습니다. 몸(들) 사이에 말이 끼어있는데 그것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일찍이 스스로의 언어를 버렸습니다.

수학과 그 기호들은 저에게 닳지 않는 부표를 띄우고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와 휩쓸리지 않는 닻을 내릴 수 있는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시간이 멈춘, 시차가 없는, 사이가 벌어지지 않는, 몸이 없는 언어는 소름 끼치도록 짜릿했습니다. 처음으로 불변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파동의 신비에 빠져들었습니다.

모든 물질과 비물질이, 공간도, 발가락도, 양말도, 치킨도, 심지어 시간까지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어요. 몸은 그럴 수 없는데 파동은 이론적으로 끝없이 겹쳐질 수 있으니까. 실재하는 시공간에서 가장 무한에 가까운 것을 느꼈습니다. 수학과 달리 물리학에서 시간은 절대로 멈추질 않더군요. 저는 실존하는 것들에 조금 더 가까워졌지만 이번엔 그게 나쁘지가 않았습니다.

뇌 트라우마 연구소에서 뇌의 점탄성을 연구했는데, 해마의 각 부위를 나노미터씩 찔러보고, 얼마나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는지를 재는 실험이었습니다. 물리와 수학, 그리고 생소하던 생물이 적절히 섞여 있던 일이었습니다. 몸과 더 가까워진 와중에 저의 뇌에는 이런 상(image)들이 성기게 피어났습니다.

갓 채취한 돼지의 뇌를 가지고 지하철을 타고 실험실로 향하는 길. 뇌가 든 가방 속 얼음이 유난히 크게 바가각 거리는 소리. 제멋대로 덜컹대는 뉴욕 지하철. 저는 진동 방향에 맞춰 몸을 시시각각 움직이며 뇌가 식염수 정중앙에 손상 없이 붕 떠 있기를 바랍니다. 마법처럼. 아직도 살아 있는 세포들이 있을 테니까.

앗, 뇌가 든 가방의 손잡이 부분에 피가 약간 묻어 있습니다. 경찰이 나를 제지하면 뭐라고 하지? 사람의 뇌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크기가 작으니까. 그렇지만 딱 봐도 너무 뇌인데? 출퇴근 시간이 지난 지하철에 앉아 있는 사람들. 그들의 가늠할 수 없는 얼굴. 들어도 알 수 없는 발자국. 뇌를 조심스레 해부해서 해마를 추출할 때, 메스는 생각보다 얇아서 뇌는 물론 이고 살도 어떤 저항 없이 가를 수 있습니다. 한번은 메스가 손가락 끝을 뚫고 손톱까지 틱 하고 그대로 들어갔는데 뺄 때 잘 빼서 그런지 피도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그림 그릴 때는 손발이 부산합니다. 물감도 섞어야 하고, 물감이 표면에 어떤 형태로 반응하기를 원하는지에 따라 적당한 용매를 만들어야 하고, 나무 프레임이나 패널도 만들어야 하고, 캔버스도 프레임에 팽팽하게 마운트해야 하고, 그런 밑작업이 다 끝난 후에 비로소 붓을 들고, 물감을 찍어서, 캔버스에 바릅니다.

물감과 용매는 물질이라 곧 소진되기 때문에 다시 붓을 팔레트로 옮기고, 물감을 찍거나, 붓을 씻거나, 다른 붓으로 바꿉니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합니다. 주로 서서 하는 일들입니다. 저는 저의 몸과, 몸이 수반하는 개인적 물질적 사회적 정의와 교류를 벗어나고 싶었는데, 어느새 점점 몸과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림은 말처럼 쓸 수도 있고 말이 아닌 것처럼 쓸 수도 있습니다만, 내가 사랑했던 그림들은 가장 첨예한 말이면서도 동시에 말과 가장 멀었습니다. 그것은 터지기 직전의 상태, 너와 나, 나와 나의 안과 밖에 있는 것의 경계가 무너질 때, 미세한 균열이 어느새 지각의 벌어짐이 될 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찔한 맘. 그리고 저는 차차 알게 되었습니다.

아. 미로를 탈출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미로 안에 있구나. 미로를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헤매는 것 자체가 의미구나. 균열을 낼 수 있는 것들을 외면하고 부정하고 있었구나. 모든 것들이 언어였습니다. 말이 아닌 것들도 언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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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꼭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한 언어로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꼭 이해받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헤맴의 궤적을 통해서도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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