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에서 기피해야하는 이름과 본 받고자 하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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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에서 기피해야하는 이름과 본 받고자 하는 이름
  • 박동현
  • 승인 2022.01.03 17: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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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구의 지명이 대구(大丘)에서 대구(大邱)로 바뀌었다. 언덕 구(丘)자가 공자의 이름이기 때문에, 성현의 이름을 지명으로 감히 쓸 수 없다고 해서 땅이름 구(邱)자로 고쳤다. 원래 달구벌의 한자이름이었던 대구(大丘)는 결국 순조시대 이후 공자의 이름을 범했다는 이유로 고유의 이름을 잃고 말았다.
중국 천하를 통일한 한나라 유방이 자신의 모사, 장량
고대 중국 천하를 통일한 한나라 유방이 모사 장량 

우리역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임금 이름을 외자로 지은 것이다. 고려왕조의 경우 475년간 34대 국왕이 등극했는데, 모두 외자 이름이었다. 1대 태조 建, 2대 혜종 武, 3대 정종 堯, 4대 광종 昭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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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 이름

조선의 경우 3대 태종 방원, 6대 단종 홍위를 제외한 나머지 25명의 국왕이름이 모두 외자이다. 이씨조선이므로 성은 모두 이씨이고, 이름은 한 글자로 작명했다. 세종 이도(李裪), 세조 이유(李瑈), 성종 이혈(李娎) 등이다.

태조 이성계와 2대 정종 이방과는 조선 건국 이전에 지은 이름이므로 두 자였다. 그러나 조선을 건국한 이후 태조는 성계에서 단(旦)으로, 정종은 방과에서 경(曔)으로 각각 바꿨다.

평범한 왕족으로 강화도에서 평민처럼 살았던 강화도령 이원범은 철종으로 즉위하자 외자인 변(昪)으로 개명했다. 그리고 원래 이름이 이명복이었던 고종은 왕위에 오르자 역시 희(熙)로 변경했다.

그렇다면, 역대 국왕들이 이름을 외자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왕들이 이름을 외자로 한 이유는 바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 황제나 임금, 옛 성현의 이름을 피해야 했던 기휘(忌諱)제도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고려왕조는  475년간 34대 국왕이 등극했는데 모두 외자 이름이었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임금이나 집안 어른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거나 또는 그 이름을 따서 작명하는 것을 삼갔다. 이것을 ‘기휘(忌諱)’라고 한다. 백성의 성함이 임금의 이름과 같은 경우 모두 개명해야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중국의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의 집권자 淵蓋蘇文(연개소문)을 泉蓋蘇文(천개소문)이라고 부른 것은 연개소문의 성씨가 제 아비인 당고조 李淵의 이름자 淵과 같다고 하여 이를 기휘(忌諱)하고자 비슷한 뜻의 글자인 천(泉)으로 바꾼 것이다.

삼국사기에도 연개소문을 천개소문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대구의 지명이 대구(大丘)에서 대구(大邱)로 바뀌었다. 언덕 구(丘)자가 공자의 이름이기 때문에, 성현의 이름을 지명으로 감히 쓸 수 없다고 해서 땅이름 구(邱)자로 고쳤다. 원래 달구벌의 한자이름이었던 대구(大丘)는 결국 순조시대 이후 공자의 이름을 범했다는 이유로 고유의 이름을 잃고 말았다.

그러니 역대임금들은 자신의 이름을 지을 때, 한자라도 줄여서 백성들의 불편을 없애려고 했다. 그나마 외자도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희귀한 글자로 작명함으로써 백성들이 개명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했다. 세종 이도(李裪), 세조 이유(李瑈), 성종 이혈(李娎) 등을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면 얼마나 희귀한 글자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기피해야하는 이름이 있는 반면 본 받고자 하는 이름도 있다.

중국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모사(謀士: 우두머리를 돕는 전략가)는 누구일까? 우리는 삼국지의 제갈량을 떠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제갈량과 삼국지 장수 관우의 사당이 서울 남산과 동묘에 각각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의외로 드물다.

장량, 그러나 중국과 조선의 역대황제나 왕들은 자신이 아끼는 모사를 부를 때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사인 장자방의 이름을 본따서 오지자방(吾之子房: 나의 자방)이라고 불렀다. 이는 중국 천하를 통일한 한나라 유방이 자신의 모사, 장량을 일러 한 말이다. 그의 행적은 사마천 『사기』에 기록돼 있다.

필자 오세열 교수는 Midwest 대학원 리더십 교수이며 성신여대 명예교수, 목회학 박사(D.Min), 목사, 경영학박사(고대)이다.
필자 오세열 교수는 Midwest 대학원 리더십 교수이며 성신여대 명예교수, 목회학 박사(D.Min), 목사, 경영학박사(고대)이다.

『삼국지』의 조조가 모사 순욱에게 “내가 그대를 얻은 것은 한고조가 장자방을 얻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장자방의 이름은 소설 『삼국지』에 등장인물만큼이나 빈번하게 거론된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도 자신의 건국대업에 결정적 책략을 제공한 모사 유기를 나의 자방이라 일컬었다.

조선시대 세조는 왕위 찬탈의 역할을 한 한명회를 나의 자방이라고 했다. 제갈량은 장자방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고 그를 ‘제왕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장량은 자신의 주군 유방을 도와 천하를 쟁취했지만, 제갈량은 천하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오장원 진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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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웅 2022-01-04 09:52:57
이름이 왜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하는 훌륭한 글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조선시대 이전부터 양반은 양반다운 아호(雅號)를,
노비나 하층들은 하층다운 아호를 썼는데,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가
양반은 아호를 쓰면서 매번 시기마다 바꿔서 장수와 생명 유지에 영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노비나 하층들은 육체적 노동으로 건강하게 사는 반면,
양반들은 술과 유흥을 즐기거나 글을 읽으며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해 귀신들이 일찍 잡아간다고 하여 매번 아호를 바꾸면 저승으로 데려갈 사람을 찾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였습니다.
또한 호칭으로 귀족과 서민을 나누고, 한번 가진 신분에 거스르지 말라는 뜻도 전해진듯 합니다.

작금의 이름 작명은 일정한 규칙없이 부르기 쉽거나 본인이 쓰고싶은데로 이름과 호를 만들어 쓰곤 하지만,
수많은 성명학자들의 지론에 의하면 사람마다 써야할 이름의 한계는 반드시 정해진것이므로 조심스럽게 작명하고 불러지지 않는다면 운은 좋게 풀리지 않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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