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체험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사는 삶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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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체험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사는 삶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 박동현기자
  • 승인 2016.08.23 2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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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 거주 Alex Seo 페북에서 옮겨옴.
▲ 유대 광야

다윗의 엔게디 광야 이야기는 다른 두 개의 광야 이야기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하나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40년 동안 시내 광야를 지나간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유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을 하신 이야기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 이야기들은 성경에 나오는 세 가지 위대한 광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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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이야기는 유혹과 시험의 이야기다. 광야는 시험의 장소이며 유혹의 장소이다. 광야는 야생의 땅이다. 길들여지거나 경작된 것은 전혀 없다. 거기서의 삶은 순전히 생존이다. 모세의 광야 이야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분간하는 법을 훈련받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법을 배웠다.

광야 체험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사는 삶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예수님의 광야 이야기에서는 우리 주님은 종교와 영성, 즉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분간하는 법을 배우셨고, 그것을 통해 그분은 우리의 협력자, 충고자, 좋은 친구를 넘어 우리의 구세주가 될 준비를 갖추셨다.

다윗의 광야 이야기에서 우리는 미움 받고, 한 사람의 인간이기를 거부당하고 한 마리 사냥감 신세로 전략한 젊은이가 신성 모독의 삶과 기도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결국 기도를 택하는 모습을 본다. 그는 기도를 선택하면서 거룩함을 연습하는 삶을 시작했다.

그것은 매우 earthy(거치른) 거룩이었으나 분명 거룩이었다. 나는 거룩이나 거룩 같은 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염려가 된다. 왜냐하면 그 단어들은 잘못된 연상시켜 왔고 나를 오해를 받고 싶지 않기 떄문이다. 우리는 보통 '거룩한'이라는 단어를 '하늘나라에서 온 것처럼 착한' 혹은 '나 같은 사람과 사귀기에는 너무 선한' 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얼토 탕토 않게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광야생활이 다윗 안에 강력하게 형성시켜 놓은 바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이 없기 때문이다. 핵심은 다윗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점검 더 인간다워져 갔다. 그리고 더욱더 그는 '다윗 다워져' 갔다. '거룩한'은 바로 그러한 삶, 즉 '살아계신 하나님'과 관계를 통해 점점 살아 있는 인간으로 깨어나는 삶을 묘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 가장 인간다워진다.

다른 길로 가면 점점 더 인간다움과 나 자신다움에서 멀어 질뿐이다. 광야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것들 그리고 '궁극적 근본' 즉 하나님과 대면한다. 이 대면은 시험이요 유혹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 맺기를 택할것인가? 이 시험의 결과, 우리는 더 나아지기도 하과 더 나빠지기도 한다. 성장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한다. 다윗은 더 나가졌다. 다윗은 성장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의 광야 생활 이야기를 읽으며, 하나님의 손길과 그에 대한 다윗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나 친구들의 삶 속의 광야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유사한 반응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된다.

출처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中에서 Alex  Seo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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