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칼럼) 돈의 힘과 매력, 돈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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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칼럼) 돈의 힘과 매력, 돈이 참 좋다?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3.03.15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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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은 기독교인들, 특히 목회자 세계에서 기대되는 덕목이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결코 작지 않다. 예수의 공생애를 보면, 예수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이셨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신앙인은 돈으로부터 자유하고픈 염원과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려는 마음, 그리고 동시에 품위있는 일상에 대한 소망도 함께 있기에 정작 돈 앞에서 애매한 태도가 될 수밖에 없다. 
한일장신대 총장
한일장신대 총장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역사 속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시대가 있었을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출생과 동시에 돈이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 없이는 생존을 지속할 수 없다. 돈, 즉 화폐는 물과 공기만큼이나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래서 돈은 다다익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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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까짓 돈”이라고 말들 하지만, 돈은 절대 ‘그까짓’ 이라고 평가받아서는 안 될, 귀하고 귀하신 님(?)이다. 돈에 대한 비현실적 '하대' 표현은 아마도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체면 문화와 유교적 분위기에서 오는 것 같다. 돈에 대한 이런 이중성은 기독교인의 경우 훨씬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성경말씀이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장24절)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누가복음 18장24절). 그뿐인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마태복음19장24절)라는 말씀도 있다. 

이 말씀은 누가복음에서도 발견된다. 청빈(淸貧)은 기독교인들, 특히 목회자 세계에서 기대되는 덕목이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결코 작지 않다. 예수의 공생애를 보면, 예수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이셨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신앙인은 돈으로부터 자유하고픈 염원과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려는 마음, 그리고 동시에 품위있는 일상에 대한 소망도 함께 있기에 정작 돈 앞에서 애매한 태도가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현대 사회는 재산과 연봉이 인격이 되는 상황들로 넘쳐난다. 어느 정도의 재산이나 일정한 수입이 없으면 속된 말로 사람 대접받기도 어렵다. 부모와 자식, 피를 나눈 형제자매도 경제적 문제 앞에서는 관계가 어그러지고 심지어 멀어지는 게 다반사다. 

우리 일상에서 문제의 80~90%, 심지어 교회의 문제 역시 돈과 관련된 문제가 대부분이다. 돈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인간사의 아픔과 고통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을 구분하여 돈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제시하는 예수의 지혜는 실로 놀랍지 아니한가.

오늘날 대부분 교회들이 직면해 있는 목회자 및 사역자의 사례비 문제, 특히 세상법(근로기준법, 최저임금제)이 엄연함에도 각 교회의 상황에 따라 책정될 수밖에 없는 사례비 문제는 여전히 충분히 그리고 제대로 공론화된 적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 사례비에 대한 신세대 목회자들의 생각과 어르신 목회자들 사이의 견해 차이는 일반 사회에서의 유사한 문제들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교회주의가 일반화되어 있다 보니 사례비 문제 역시 개교회의 문제이고, 목회자 개인과 당회의 기준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다. 

목회자 세계의 보수 문제와 관련하여 지금 우리가 과도기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지금이 바로 좀 더 솔직하고 신앙적인 방안을 내놓고 논의해야 할 시점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신학대학들은 어떠한가. 이곳들 또한 목사, 장로를 비롯하여 집사 직분 이상의 교수와 직원들이 일하는 일터이다. 일반 사회의 근로기준법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신학대학들은 정서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교회의 사례 개념이 수용되어 온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야흐로 이 둘이 정면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방에 소재한 신학대학들, 일반 학생들은 물론 신학공부 지원자들의 감소와 그로 인한 재정 압박은 가속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교직원들의 임금은 사회법에 따라 책정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대학 사회에서는 교회처럼 재정 형편에 따른 임금의 상하 조정이 용이하지 않다.

사회가 엄격하게 요구하는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해서는 학교들마다 다양한 수입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절대 현실적인 전망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신학대학 내에서 임금 하향 조정과 관련해 교직원들의 고소고발로 이사장에게 실형까지 선고되었다. 근로기준법을 맞출 수 없는 신학대학의 현실 앞에서 갈 길이 막막하다.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그 가르침, 동시에 엄격한 사회법이 적용되어야 하는 교회와 기독교 공공 기관들의 보수 체계, 그 괴리를 어떻게 해소해야 우리의 신앙과 일상생활을 병행하고, 각 기관들의 생존을 유지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 그 해답이 참으로 절실하게 요구된다.

예장통합 총회산하 남선교회연합회 기관지 평신도신문 '논단'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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