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나의 간증' 이옥선 집사 하나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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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의 간증' 이옥선 집사 하나비전교회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3.04.2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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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누군지 모르는 한 노인 내외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도, 그 사람들이 좋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그 사람들 말을 믿어보기로 하고 따라갔습니다. 거기서 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무릎을 꿇고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하늘의 신을 불러 나를 이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소리를 질러 보았습니다.
이옥선 집사가 간증을 하고 있다. 송신복 목사(평택 하나비전교회) 

저는 황해도에서 태어나 회령으로 시집와서 살다가 2009년에 탈북하여 중국에서 살다가 2019년에 한국에 입국한 하나비전교회 이옥선집사입니다. 저는 어머니는 리당 초급당 비서로, 빨간 공산당 가정에서 태어나 김일성을 하나님처럼, 김일성 승배사상에 푹 젖어 살았습니다. 회령시에서 잘 산다고 손꼽히는 집에 시집와서 고난의 행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근심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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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탈북하게 된 것은, 제 남편이 외도에 당시 저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임으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중국에 가서 새 출발을 해서 잘 살아볼 희망을 안고 중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두만강을 건널 때 까지만 해도, 제 팔자는 상팔자여서 어디가든 잘 살 것 이라는 망상에 빠져 두만강을 건넜으며, 소개자(브로커)로부터 중국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국인과, 하얼빈 쪽에 있는 중국 사람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때는 제가 북한에서 ‘한국은 철천지원수’라는 세뇌를 많이 받아서 한국 사람은 입 밖에 꺼내지도 말라고 하며 중국 사람을 선택하여 하얼빈 쪽에 가게 되었습니다.

송신복 목사가 통성 기도를 인도 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저에게는 인생의 너무 힘든 길이 될 줄은 생각 못했습니다. 서슴없이 중국사 람을 따라 간 것이 팔자가 좋아서 아무데 가서도 잘 살 것이라는 허황한 생각으로 결단을 내린 것이 중국에서 제일 못살고 집 벽은 진흙을 바른 집, 쌀도 돌 맹(돌을 가려내어)이를 골라서 밥을 해 먹는 집이였습니다.

제 생각과 정반대의 삶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으므로 깊은 함정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앞길이 캄캄하였습니다. 며칠 뒤에 밖에서 옥수수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남편(중국인)이 저보고 옥수수 정리하러 밖에 나오라고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고 집에서 점심밥을 해주려고 쌀에서 돌 맹이를 고르고 있었는데, 순간 소리가 나면서 나의 잔등으로 몽둥이가 날아왔습니다.

제가 의지하고 살아 볼가 생각하였던 남편에게서 매를 맞으니 너도 이제 보니 나에게는 원수였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튀여 올라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저의 손톱으로 긁어 놓아 그 얼굴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그리고는 밥을 먹지 않고 죽을 생각을 하였습니다.

중국 집 사람들은 내가 하루 굶고 일어나서 밥을 먹겠지 라고 생각하고 저에게 관심이 없었는데 이틀 지나 사흘 되도록 물도 안 먹고 누어서 일어나지 않으니 죽을 것 같은 두려움, 남편은 저에게 와서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다시 반복될 때 네 마음대로 하라고 용서를 구함으로 저는 그들을 용서하여 주었으며, 또 중국말도 몰라서 어디에 갈 곳이 없어 다시 살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남편을 증오하게 되어 서로 딴 방에서 살았고, 어디 누구에게 말 할 곳도 없어 벙어리로 숨이 막혀 사는 것조차 역겨운 생각과 정신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임으로 밥도 먹기 싫고 마트에서 사온 매운 음식을 조금씩 먹다보니 몸은 쇠약 할대로 쇠약해 온 하루 누워서 자고 싶은 마음뿐 온 몸이 땅으로 잦아들었습니다.

어느 날 누군지 모르는 한 노인 내외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도, 그 사람들이 좋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그 사람들 말을 믿어보기로 하고 따라갔습니다. 거기서 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무릎을 꿇고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하늘의 신을 불러 나를 이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소리를 질러 보았습니다.

어느 날 점심때쯤 제가 너무 아파서 혼자서 댕글댕글 몸을 굴리며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데 하늘에 등근 달 같기도 하고 해 같기도 한 큰 불덩어리가 쏜 쌀같이 저의 입으로 돌덩이처럼 떨어져 들어가면서 목부터 안으로 씻어 내려가면서 언제 아팠던가 싶을 정도로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참 세상에 신이 있다고 하더니 무슨 신이 나를 도와주었나 보다 싶고 너무나 신기하였습니다. 저는 중국노인 내외에게 찾아가 말은 하지 못함으로 손짓으로 있었던 사실을 말했더니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저는 주님을 알지도 못하는데, 하나님은 내 자녀라고 깊은 구덩이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의 길로 가는 저를 먼저 찾아 오시여 저를 치료하여 주셨으니 그 한없는 사랑을 한국에 와서 교회에 가서야 깨닫게 되어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성령의 체험을 하고도 다시 세상으로 나와 온갖 죄를 지으면서 내 힘으로 잘 살아 보려고 했는데 갈수록 태산이라고 모든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이 남의 손에 묶이어 그들의 뜻대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고,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 보냈습니다.

그런 속에서 저에게 소망을 준 것은 한국으로 가는 길이였습니다.

그 길도 주님의 섬리 안에 있었고 그 험한 길도 하나님이 독수리 같이 업어 무사히 한국에 입국하게 하시였고 하나원에서 제 나이 50이 넘어서 무엇을 하랴 낙심하고 있을 때에도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게 하셨고, 시험 치려 들어 갈 때에 두려워하는 저를 보시고 기도를 하게 하시고 힘을 주시여 시험장으로 들어가게 하셨고,

시험 치면서도 확신이 없어 불합격 일 것이라고 단절하였을 때에도 백점을 맞게 하여주시며 이것이 네 머리가 좋아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백점 맞게 해주셨다고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게 하시며 다시 저에게 주님만 믿고 살아간다면 못할 일이 없다는 신심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원(탈북인 한국사회 적응훈련원) 수료 후 나와서 오산에 집(임대주택)을 받았는데, 평택에서 사역하시는 송신복 목사님을 만나게 하여 주시고, 거기서 기숙사 아이들을 돌보게 하여주시었으며, 이것이 너에게 다음세대 아이들을 잘 키우라고 맡긴 사역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오직 김일성에게 충성과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산다는 것 밖에 배운 것이 없이 한국에 오고 나니 처음에는 이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현실과 부딪쳐서 잘못 할 때(도덕적 문화차이)에도 그것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죄를 지을 때가 많았습니다.

아무것도 배운 것 없이 주먹으로 일하려고 할 때에 사회복지공부를 하게 하셨고, 지금은 한국어교사 공부를 하고 있으며 송신복 목사님이 강의하시는 북한이탈주민 상담사교육을 통하여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가 다르고 생각하는 마음이 서로 다름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보고 대하여야 함을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고 사랑할 대상임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상에 빠져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저를 주님의 자녀로 선택하여 주시였고, 교만에 빠져 제가 잘나서 잘산다고 머리를 쳐들고 무서운 것도 모르고 돌아가는 죄 많은 이 인간을 중국에서의 고난을 통하여 깨닫게 하여 주시고 치료 하여주시고, 한국에서 하나비전교회를 다니면서 매일 성경을 읽고, 새벽기도와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주님만이 나의 구세주, 나의 구원자이심을 진심으로 믿게 하셨습니다.

저의 삶에서 저의 모든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의 삶을 살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창세기 45장에서 요셉은 자기를 팔아넘긴 형제들을 만나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냈다고 형제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또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끝까지 용서하며,

인내하며 기도로 견디어내는 모습을 읽으며, 주님이 십자가에서 자기를 못 박는 이들을 용서하라고 기도하시며, 실제로 배반한 제자들을 먼저 찾아오셔서 사명을 주시는 모습을 보며 신앙은 현재의 모든 삶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사는 것임을 깨달으며, 나를 힘들게 한 북한 남편도 실제로 다 용서하고, 중국에서 힘들게 했던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용서하며, 오늘도 나를 힘들게 하는 주변사람들도 용서하며,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 있어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그리고 교회생활이 즐겁고 기쁘게, 십일조를 드리면서 교회 살림을 생각하게 하셨고, 교회를 섬기는 일군으로 집사직분을 주시고, 재정부장으로, 찬양대원으로 섬길 수 있도록 하셨고, 세상에 두 번 다시 태어나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확신성 있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으세요. 세상 적으로 볼 때에는 저에게는 한국 땅에 자식 형제 하나도 없는 가없는 사람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보는 귀한 사역을 하는 일군이라고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분들이 우리교회에 예배드리려 왔다가 저희들이 명절을 어떻게 보냈는가 걱정이 되어 물어보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저의 입에서는 거침없이 주님이 저와 함께 계시는데, 저는 명절날도 주님과 함께 보내니 너무 행복했습니다. 라고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주님께 근심, 걱정, 염려, 통 털어서 맡기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건강이 회복되고 마음에 기쁨으로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마음에 외로움이 들을 때마다 찬양을 부르고 나면 그 모든 어둠의 세력이 다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게 하시니 어찌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 없이는 한 시도 살수 없는 이 몸 주님과 순간순간 살지 않으면 죄가 지배하는 이 몸이기 때문에 주님 앞에 매일 첫 새벽기도를 드리며 주님께서 날마다 주시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순종으로 내일 주님이 행하실 일을 소망하며 주님가신 십자가의 길을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는 나를 책임지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이 저를 책임져 주시고 나를 위하여 물과 피를 훌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저와 함께 계십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제가 주님 안에서 4년 넘게 살아온 교회에서의 삶이 천국의 삶이였습니다.

이 길이 고난이지만 그 뒤 끝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항상 있는 것을 목격하면서 주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그들이 불쌍하게 여겨지고 제가 받은 주님의 은혜를 그들에게 흘러넘쳐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주님께서 계획하고 계시는 복음통일에 저의 온몸과 마음을 다하려고 합니다.

저에게는 비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북한의 문을 여셨을 때 송신복 목사님과 함께 북한에 들어가 평신도 사역자로서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어린이 센터를 세우는 사역을 하며, 주일에 어린이 센터 아이들이 다 교회에 가서 예배자로 서게 하며, 그 땅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길 만이 참된 소망의 길, 이길 만이 살아있는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먹으며 눈물이 변화여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길이기 때문에 주님가신 그 길로 나아가 주님께서 계획하고 계시는 복음통일에 동참하여 하루빨리 남북한이 통일이 되여 남과 북이 화합하여 이 땅에서 주님께 영광을 드리며 대대손손 주님의 말씀이 이 땅에 흐르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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