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정 중 목사님 한 분이 “은퇴하신 심정이 어떠세요?” 하고 물으셨습니다. 상투적인 대답이지만 “아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합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음 날 그 목사님께서 저에게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제가 일찍 은퇴하면서 ‘아쉽다’고 한 것이 의외라 여겨져서 놀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는 사람은 은퇴할 때 아쉬울 것이 없으리라’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일찍 은퇴하면서 아쉬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선한목자교회에서 13년 동안 예수동행 목회를 하기 힘썼습니다.
제가 은퇴하면서 깨닫는 것은 ‘이제 예수동행 목회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느낌입니다. 결코 예수동행 목회가 잘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동안은 불가능해 보이는 시기를 믿음으로 지난 것에 불과합니다.
이제 '선한목자교'회 안에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하는 말이 자연스러워진 정도입니다. 교인들에게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지’ 하는 인식이 생긴 정도입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쉬워하는 것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는지, 어떤 열매를 맺게 되는지 보지 못하고 은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통하여 일하시는 방법임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6-7)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일을 하는 종은 누구나 심고 물 주는 정도이지,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심고 그 열매까지 얻겠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그것이 그에게 유익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렇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어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냉정해 보일 정도로 허락하지 않으시고, 가나안 정복은 여호수아가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가장 지혜로우시고 완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후임이신 김다위목사님께서 예수동행 목회의 열매가 풍성히 맺어지는 것을 보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게 그것을 깨우쳐 준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은퇴를 앞둔 어느 날, 집회에서 만난 한 젊은 목사님께서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일찍 은퇴하시니, 너무 아쉬워요! 목사님을 뵙기만 해도 은혜가 되고 의지가 되고, 위안이 되고, 힘을 얻고, 든든한 울타리라 여겨졌었는데 말입니다. 이젠 누구를 바라보고 사나 걱정이 됩니다”
제가 그 목사님의 말을 듣고 진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저를 보고 힘을 얻었다면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받는 은혜였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어떤 사람을 통하여 주님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목사님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목사님과 대화하면서 제가 오히려 주님을 가리우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일찍 은퇴하는 것이 오히려 주님께 더 유익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일찍 은퇴하면서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그 또한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합니다. 출처: 유기성 목사 폐이스(메시지로 기사화 허락을 부탁 했으나 대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