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크레타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미노아 문명의 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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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크레타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미노아 문명의 중심이었다
  • 박동현기자
  • 승인 2017.01.0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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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십자군 원정 때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는다. 베네치아는 이 섬을 4백 여 년 간 지배했으며,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이 시기에 예술 작품이 많이 나왔다.

에서 가까운 '아름다운 항구'라는 곳에 겨우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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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Κρήτη, Crete)는 그리스의 13주 가운데 하나이며, 그리스에서는 가장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는 5번째로 큰 섬으로 면적은 8,336 평방킬로미터이다. 오늘날 크레타는 그리스에서 문화적ㆍ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음악이나 방언 등 독특한 지역 문화가 있지만 크레타 사람들도 자신을 그리스인으로 생각한다.

고대사에서 크레타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 땅에는 미노아 시대 크노소스와 파이스토스의 유적, 고르티스 유적, 하니아항과 베네치아의 옛 도시, 레팀노의 베네치아 성과 사마리아 협곡 등 다양한 유적이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수백 년간 이 섬은 이탈리아 명칭인 '칸디아'로 알려졌는데, 이 섬의 수도인 이라클리오의 중세 명칭 '칸닥스'(Chandax, 그리스어: Χάνδαξ or Χάνδακας, "해자", 터키어: Kandiye)에서 나온 이름이다. 흔히 알려진 "크레타(Creta)"란 명칭은 고전 라틴어에서 나와 영어권 및 라틴 문화권에서 통용화된 것이다. 터키에서는 기리트(Girit)라고 한다.

그리스와 크레타, 이 섬에는 2005년 기준으로 650,000명이 살고 있으며, 그리스의 13 관구 중 한 곳이다.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며, 지중해 동부에서 키프로스 다음으로 큰 섬이기도 하다. 크레타는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인데, 동에서 서까지 260 km에 이르지만 남북으로 그 폭은 60km 정도이며, 폭이 12km에 불과한 레라페트라처럼 좁은 지역도 있다.

▲ 크레타 유물

크레타의 면적은 8,336 평방킬로미터이며 해안선의 길이는 1,046km로, 북쪽에는 크레타 해(Κρητικό Πέλαγος)가, 남쪽에는 리비아 해(Λιβυκό Πέλαγος), 서쪽으로는 미르토아 해, 동쪽에는 카르파티온 해가 있다. 그리스 본토와는 남쪽으로 160km 정도 떨어져 있다.

크레타에는 산지가 매우 많으며, 동에서 서로 높은 산맥이 이어져 있으며 큰 산맥 세 곳을 이룬다. 레프카 오리(흰산, 2,452m) 이디 산맥(프실로리티스, 2,456m) 딕티 산맥(2,148m) 케드로스(1,777m)

트리프티(1,489m) 산맥 위로는 라시티, 오말로스, 니다 등 비옥한 고원이 있으며, 딕타이온, 이타이온같은 동굴과 유명한 사마리아 협곡 같은 협곡도 있다.

사마리아 협곡의 보호지역은 크레타 염소 키리키리의 서식지이며, 크레타 산지와 협곡은 멸종위기 종인 수염수리(Gypaetus barbatus)의 은신처이다. 섬 남부에 있는 예로포타모스 강 등의 강이 있다.

▲ 크레타 유적

크레타 섬의 전형적인 여름 풍경. 크레타는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두 기후 지역에 속하는데, 주로 전자에 속한다. 그래서 크레타의 기후는 무척 온화하다. 공기는 상당히 습하고,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겨울에도 꽤 따뜻하다. 11월에서 5월 사이 산에는 눈이 흔하지만, 특히 해안 등 낮은 지역에는 드물며 몇 분, 몇 시간만 지나도 땅에 금방 눈이 사라진다.

그러나 2004년 2월에 이 섬에 갑자기 이례적으로 추위가 닥쳐서 온 섬이 눈에 덮히기도 했다. 크레타의 여름은 평균 기온이 섭씨 20도 후반에서 30도 초반 정도이며, 가장 더울 때는 섭씨 30도 후반에서 40도 중반이다.

메사라 평야나 아스테루시아 산맥 같은 남쪽 해안은 북아프리카 기후대에 속하여 다른 곳보다 여름에 더 덥고, 연중 기온도 높다. 크레타 남부는 대추야자가 열매를 맺으며, 제비가 아프리카로 가지 않고 일 년 내내 이 섬에 남아있는다.

역사, 크레타 섬에 최초로 사람이 산 것은 도기 이전(aceramic)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들은 소, 양, 염소, 개를 키웠고, 곡물과 콩을 재배했다. 고대 크노소스는 신석기(나중에는 미노아 문명) 유적지의 한 곳이다.

크레타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미노아 문명의 중심이었다. 초기 크레타의 역사는 미노스 왕, 테세우스,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같은 전설이 서려 있으며, 호메로스 같은 시인들의 입으로 전해졌다.

크레타는 미트리다테스 전쟁에 휘말려 기원전 71년에 로마 장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크레티쿠스의 침공을 처음에는 물리쳤으나, 뒤이어 삼개 군단을 이끌고 온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와 3년간 악명 높은 전쟁을 벌이다 결국 기원전 69년에 로마에 정복되었다.

그리하여 메텔루스는 "크레티쿠스"(Creticus)란 칭호를 얻었다. 고르틴은 이 섬의 수도가 되었으며, 키레나이카와 더불어 크레타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 크레타 유적

이후 크레타는 비잔티움 제국의 일부로 남았다. 그러나 이베리아 무슬림 아부 합스 우마르 알 발로티가 826년 이 곳을 점령하여 크레타에 해적 토후국을 세웠다. 960년 비잔티움의 니케포로스 포카스가 다시 섬을 수복하여 1204년까지 비잔티움 영토로 남았다.

그러다가 4차 십자군 원정 때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는다. 베네치아는 이 섬을 4백 여 년 간 지배했으며,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이 시기에 예술 작품이 많이 나왔다. 크레타 르네상스의 유명한 예술가로는 화가 엘 그레코와 작가 비첸초스 콜나로스가 있다.

피리 레이스의 크레타 고지도. 베네치아 시대 칸디아 시는 지중해 동부에서 가장 요새화된 도시로 유명했다. 1492년 에스파냐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와서 살았다. 1627년 칸디아 시에는 800여명의 유대인이 살았으며 도시 인구의 7%를 차지했다.

1669년 오스만 제국이 21년간의 칸디아 공성전을 벌인 끝에 크레타를 정복했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 시대에 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모스크가 되었다. 그러나 자유와 권리는 계속 보장되었다. 17세기에 이 도시는 높은 성벽과 능보로 둘러싸여 서쪽과 남쪽까지 뻗어있었다.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은 북동쪽 지역으로, 이곳에 모든 상류층이 모여 살았다.

오스만 제국이 칸디아에 편 도시 정책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종교 재산이었다. 이를 통해 오스만의 지도층은 파괴된 도시를 재건할 수 있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인구를 늘리고 도시 재산을 팔아 도시 수입을 증대하는 것이었다.

몰리 그린(Molly Greene, 2001)에 따르면, 오스만 지배하에서 많은 부동산 계약 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파괴된 도시에서 소수자들도 재산을 구매하는 권리를 얻어, 그리스도 교도와 유대인들도 부동산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었다.

아랍인의 대정복 때부터 크레타에 이미 무슬림들이 살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무슬림이 더 늘어났다. 대부분의 크레타인 무슬림들은 크레타 그리스어를 쓰던 지역 그리스 개종자들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크레타의 정치 상황에서 그리스도 교도들은 이들을 터키인으로 치부하게 된다.

그리스 독립전쟁 직전에 크레타 섬 인구의 45%가 무슬림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크레타 그리스도 교도 출신이었다. 나중에 터키, 로도스, 시리아 등지의 사회 불안으로 많은 무슬림들이 섬을 떠나자 남은 자들은 다시 그리스도교로 돌아오게 된다. 1900년에 섬 인구의 11%만이 무슬림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1924년 터키-그리스 인구 교환 때 섬을 떠나도록 강요받았다.

크레타는 1830년 런던 의정서로 근대 그리스 국가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얼마 안 되어 이집트의 술탄이 섬을 침략하여 지배를 받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1840년 6월 3일 런던 회의로 오스만 제국 영토로 돌아온다.

▲ 고대 문명 발상지

1833년에서 1897년까지 그리스도교도의 반란이 몇몇 일어났다. 1898년 크레타는 오스만 제국 밑의 자치령으로 있었다. 결국 크레타는 1913년 12월 1일에 그리스 영토가 된다.

세계 제2차 대전 동안 이 섬은 유명한 크레타 전투의 무대였다. 이 전투는 1941년 독일 낙하산 부대가 7,000여명의 전사자를 내며 지역 주민과 버나드 프레이버그 장군이 지휘하는 영연방군의 격렬한 저항을 받았다. 그리하여 아돌프 히틀러는 당초 대규모 공수 작전을 포기한다.

경제, 크레타의 경제는 주로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나 1970년대부터 현저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섬의 기후와 지형 때문에 농업과 목축이 중시되었으나, 생산이 떨어지고 (주로 관광과 관련된) 서비스 산업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

크레타 경제의 이 세 부분(농업, 포장, 서비스)는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보완적이다. 이 섬의 1인당 소득은 그리스 평균치에 근접하나 실업률은 4% 정도로 국가 전체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리스의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크레타에도 올리브 농업이 중요한 산업이며, 그리스 감귤도 재배되고 있다.

크레타엔 공항 세 곳이 있다. 이라클리오의 니코스 카잔차키스 공항, 칸디아의 다스칼로얀니스 공항과 시티아의 작은 공항이 있다. 셋 중 니코스 카잔차키스 공항과 다스칼로얀니스 공항은 국제선이 있어서 여행객이 이 섬을 방문하는 관문이 되고 있다.

▲ 크레타 섬 전경

관광, 크레타 지형도. 크레타 섬은 그리스에서 휴가지로 인기가 높다. 그리스에서 크레타로 오는 사람 중 15%가 이라클리오의 항구와 공항을 통해 오며, 그리스의 모든 항공 편수 중 20%가 이라클리오로 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2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크레타를 방문했으며, 1986년에서 1991년까지 호텔 숙박이 그리스 다른 지역에서 25% 정도 늘었을 때 크레타는 53% 증가했다.

오늘날 이 섬의 관광 인프라는 모든 취향에 맞게 준비되어 있다. 이 섬에는 완벽한 시설을 갖춘 큰 호화 호텔, 수영장, 스포츠와 레크리에이션, 작은 가족 소유 아파트, 캠핑 시설 등이 있다. 방문자들은 이라클리오와 하니아의 두 국제 공항이나 이라클리오, 하니아, 레팀노, 아요스 니콜라오스의 항구를 통해 섬에 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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