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영화> 종교개혁자 마틴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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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영화> 종교개혁자 마틴루터
  • 박동현기자
  • 승인 2016.01.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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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또는 말틴 루터(Martin Luther 또는 Luder, 1483년 11월 10일~1546년 2월 18일)는 독일의 전직 가톨릭 수사이자 사제, 신학 교수였으며, 훗날 종교개혁을 일으킨 주요 인물이다. 본래 아우구스티노회 수사였던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여러 가르침과 전통을 거부하였다. 대사의 오용과 남용을 강하게 성토한 그는 1517년 95개 논제를 게시함으로써 도미니코회 수사이자 대사령 설교 담당자인 요한 테첼에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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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년 그는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자신의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거부하였다. 1521년 보름스 회의에서 마찬가지로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 황제로부터 같은 요구를 받았으나 거부함으로써 결국 교황에게 파문을 선고받았다. 또한 황제로부터 삭권 박탈당했다.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강제적인 면죄부 판매는 루터의 신앙 양심을 근본적으로 흔들게 되었다.‘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순응할 수 없었고, 나아가 침묵할 수도 없었다. 루터는 자신이 가르치고 돌보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목회적 양심과 책임에 따라 설교에서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전혀 개선됨이 없자 드디어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의 만인 성자 교회의 문 앞에 ‘95개 논제’를 내 걸음으로써 기존 교회와의 본격적인 논쟁에 들어가게 되며, 이것이 종교 개혁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기록에는 교회의 문 앞에 논제를 내걸었다는 말도 없다. 더욱이 반박문은 루터가 손으로 쓴 뒤 인쇄되어 사람들에게 읽혔으며, 책으로 펴낸 뒤에도 교회의 문 또는 그 근처에 게시되었다는 말은 나타나 있지를 않다. 벽에 게시한 일을 처음 거론한 사람은 필리프 멜란히톤이며, 그는 루터가 죽은 직후 자신의 저서에서 루터에 대해 언급한 것이 반박문을 벽에 게시한 일을 기록한 최초의 것이다.

1515년 루터는 10개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을 감독하면서 서신 교환과 방문 등을 통하여 새로 발견한 복음의 씨앗을 전파할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깨우침이 얼마나 급진적인지 알지 못한 채 계속 성서 연구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면죄부 논쟁을 계기로 그것이 공공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면죄부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일곱 성사들 가운데 하나인 고해성사와 연관된 것이다. 사제는 통회하는 고해자의 죄의 고백을 듣고 죄 사면을 한 뒤 죄책에 대한 보속으로 순교, 시편 낭송, 특별 기도 등의 행위를 하게 하였는데 면죄부는 이러한 보속을 면해주는 증서였다. 그런데 면죄부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요 수입원이 되면서 교회는 면죄부 영업에 열을 올렸는데, 실제로 요한 테첼은 “금화가 헌금 궤에 떨어지며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연옥을 벗어나 하늘나라를 향해 올라가리라”고 신자들을 기만하였던 것이다.

그는 프레데릭 현자가 작센 영내에서의 면죄부 판매를 거부하자 경계 근처에다 면죄부 판을 벌여 놓았으며, 성서도 적절히 인용하고 연옥에서 당신들의 부모가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감정에도 호소함으로써 순진한 신자들을 현혹하였다. 이러한 타락에는 교인들도 원인을 제공하였다. 실제로 중세 교회의 신자들은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진지한 신앙생활보다는 면죄부를 구입함으로써 죄의식을 면하려는 손쉬운 신앙생활을 좋아하였으며, 구원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교회의 주장이 과연 성서의 가르침에 부합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았다.

교구민들의 영혼을 염려하는 목회적 책임감이 움직여 루터는 이미 이전에 행한(1516년 10월 31일과 1517년 2월) 설교에서 면죄부 판매를 비난하였었다. 그러나 고해 문제의 재고 요청들이 결국 실패하자 루터는 공개 논쟁을 요청하기로 결심하여 1517년 10월 31일, 제성기념일(신앙의 본을 보인 모든 성인의 날 전날 밤) 전야에 95개 논제를 비텐베르크성(城) 교회의 문에 내걸었다.

루터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셨다”라고 논제(제1조)를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복음의 재발견을 면죄부 문제에 적용하여 “교회의 참 보고(寶庫)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제62조)이라고 역설하면서, 면죄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자비에 비할 바가 아님을 천명하였다(제68조).

마지막 논제(제95조)에서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면죄부와 같은 행위의 의가 아니라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해 하늘나라에 들어 간다’고 결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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