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영화> 성서를 파 헤처라 1 고고학적인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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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영화> 성서를 파 헤처라 1 고고학적인 증언
  • 박동현기자
  • 승인 2016.01.26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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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코 (여리고)는 요르단 강 서안에 있는 BC 9000년경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예리코 (영어: Jericho, 아랍어:أريحا, 여리고)는 요르단 강 서안에 있는 BC 9000년경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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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이름은 예리고(여리고)이며 현지 아랍인들은 아리하라고 부른다. 예루살렘 북동쪽 36km, 요르단강과 사해가 합류하는 북서쪽 15km 지점에 있으며 지중해 해면보다 250m나 낮다. 각종 과실수(특히 종려나무)가 우거진 오아시스로, 예로부터 종려나무 성이라 불러왔다. 본래 요르단 영토인 예리코는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후 줄곧 이스라엘이 장악하고 있다.

성경 기록, 헤로데 대왕 궁전의 유물, 구약성경에 의하면 BC 14세기경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예리코성이 함락되었다(여호수아 6장). 신약시대의 예리코는 구약시대의 예리코보다 남쪽 6km쯤에 있는 툴룰·아브엘 알라이크라고 부르는 폐허이다. 이 곳은 헤로데 대왕의 겨울궁전이 있던 곳이며, 세리장 삭개오의 회심과 구원(루가 19장)이 이루어진 곳이라고 한다.

유적, 현재의 예리코는 비잔틴 시대의 터 위에 재건되었으며, 옛 예리코는 텔 에스술탄으로 20세기 초에 발굴되었다고 한다.

생활 방식,탄소동위원소 측정법에 의해 BC 9000년경으로 측정된 먼 옛날에 중석기의 수렵민들이 찾아왔으며, 그들의 후손이 오랜 기간에 걸쳐 정착한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BC 8000년경에는 주민들이 마을 주위에 거대한 돌로 벽을 두르거나, 적어도 어느 한 곳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거대한 돌탑을 세울 수 있을 정도의 조직된 공동체로 발전해 있었다.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던 마을은 도시라는 용어에 걸맞게 규모가 컸으며, 주민은 약 2,000~3,000명에 이른 듯하다. 이 1,000년 동안에 생활방식은 수렵생활에서 완전한 정착생활로 발전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로 농업이 발달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으며, 재배종의 밀과 보리의 낱알들이 발견됨으로써 농업 발달의 증거를 제공하는 장소의 하나가 되었다. 충분한 경작지를 마련하기 위해서 반드시 관개시설을 고안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팔레스타인 최초의 신석기 문화는 순전히 독자적으로 발전한 토착 문화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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