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적> 팔미라 제국 Palmyrene Empire (현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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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적> 팔미라 제국 Palmyrene Empire (현 시리아)
  • 박동현기자
  • 승인 2016.04.01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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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구굴어스 검색 팔미라 시리아

취재동기, 시리아 내전과 IS 등장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테러와 파괴를 일 삼는 IS가 점령한 시리의 팔미라의 고대 유적지가 크게 파손 되었다는 뉴스에 관심이 있었다. "트로이목마" 영화로 잘 알려진, 트로이 제국 발굴 현장인 터키 트로이를 2015년 4월에 기자가 방문했을 때, 제국의 영화를 느낄수 없을 정도로, 발굴 보존된 범위가 넓지 안았었다. 에페소 등도 발굴 보존된 곳이 제국이니 고대 도시를 느끼에서는 넓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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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구굴어스 검색 팔미라 시리아

2016년 3월10-19일 간 로마(이태리)를 여러날 보면서 로마인이 남긴 많은 유적과 궁과 조각 등을 보았다. 구글 어스 프로그램으로 시리아 팔미라를 검색하면서 지역 범위와 현장 사진을 보면서 고대 유적이 남겨진 범위가 넓고 많음에 놀랐다.(파괴 되시 전 모습 일 것이다) 한 때 성경의 나라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소아시아(터키) 까지 지배 했다니.. 위와같은 연유로 취재하고 편집하게 되었다.  

(아래는 위키백과 자료) 팔미라 제국은 고대 로마의 식민 도시 팔미라에서 일어나 로마 제국의 3세기의 위기 상황에서 제노비아 여왕에 의해서 세워진 제국이다. 한때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속주와 소아시아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었다. 팔미라 제국의 공식적인 왕은 어린 와발라트였으나, 그의 어머니인 제노비아가 후견인으로 섭정을 하였다. 실질적으로 왕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여왕이라고 부른다.

아우구스트의 떠오르는 해. 제국의 건설

▲ 사진 출처 구굴어스 검색 팔미라 시리아

로마 제국은 3세기에 이민족의 침입과 내란의 이중고를 겪는다. 이러한 위기는 황제인 발레리아누스가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힘으로서 최고조에 이른다. 이어서 황제에 오른 갈리에누스는 이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제국의 동방이었던 소아시아에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이르는 지역에는 사막 유목민족인 베두인족의 침입이 이어진다.

팔미라의 귀족으로 태어난 오데나투스는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이러한 오데나투스를 정규 사령관에 임명한다. 황제가 납치된 이후에도 오데나투스는 페르시아군을 수차례 침착하게 물리쳤으며, 갈리에누스 황제는 이러한 그를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일대의 방위를 책임지는 동방 사령관에 임명한다.

260년부터 267년까지 동방을 훌륭하게 방위해 낸 오데나투스는 고트족에게 거둔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 석상에서 조카의 칼에 찔려 맏아들과 함께 죽는다. 오데나투스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제노비아는 그 자리에서 살인자를 살해하고 자신의 어린 아들인 와발라트를 남편의 후계자로 앉힌다. 그리고 스스로 후견인이 되어 실권을 장악한다. 오데나투스와 달리, 제노비아는 소아시아 동부의 카파도키아와 이집트까지 영향력을 넓혔다. 출처 :  (위키백과, 참고) 

아래 사진은 시리아 팔미라 유적지 위성사신(구글어스) IS 점령기간에 70% 이상을 파괴 했다는 러시아 전문가의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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