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낙동강 전투와 워커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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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낙동강 전투와 워커장군
  • 박동현기자
  • 승인 2016.06.20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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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커 장군의 손자와 증손자(뒤편 청년 둘) 앞의 젊은 한국 여성은 통역 도우미.

사람이 현존 이전의 역사를 모르거나 잊고, 알면서 보은을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를 대신한듯 국가관이 투철한 소강석(목사)은 2016년 6월19일 주일밤, 6,25참전 생존 노병을 초천하여 환영하면서 감격에 젖어 눈시울이 불거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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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에 사석에서 기자에게 전라도 방언으로 "나라가 있어야 예수도 믿고 교회도 있고 그래야 목사도 필요한 것 아니요 우리나라가 공산화 되 불었으면(되었으면) 지금 북한과 똑 같을 것 아니요 유엔군을 보내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기자는 한국장로 신문 취재부장시절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1회부터 퇴사 할 때 까지 매년 특별취재를 했었다. 

19일밤 새에덴교회서 6시 환영만찬과 7-9시 한국전 66주년 상기 미국참전용사 초청 보은예배

▲ 6.25 낙동강전투 당시 북한군과 미군 접전라인

끼지 취재 했다. 

자료사진에서 보듯 당시 독안에 같힌 모습이 된 워커 장군 휘하의 병력은 전의가 강했다.

전투라인을 방어중 전사하는것 말고는 선택이 없었다.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있다는 성경말씀처럼,  북한군에게 밀려 바다로 익사 한것이 아니라고 역사는 적고 있다. 곧 이어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육작전이 펼처 지면서 전세는 바뀌었다. 북한군 입장에서는 남한을 다 점령하고 울산 대구 등 일부만 남았는데 유엔군 개입으로 전세가 달라 졌다. 

 http://www.tbjkorea.com         http://www.tbjoshu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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