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땅 끝에서 땅 끝까지. 김용덕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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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땅 끝에서 땅 끝까지. 김용덕 장로
  • 박동현 기자/ 조동주 기자
  • 승인 2023.08.2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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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덕 장로의 큰 동역자요 후원자는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은파)였다. 김용덕 장로가 북한선교 사역 30년이라는 이름의 기차는 앞에서 김용덕 장로가 이끌고 뒤에서 김삼환 목사가 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용덕 장로 가족

김용덕 장로(1942~ 아호 春江)은 한국교회 선교 140여 년의 역사 선상에서 볼 때 평신도 사역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북방선교사이자 불꽃같은 열정을 품은 평신도 사역자였다. 최근 김용덕 장로의 회고록이 각각 1권 대담집(땅 끝에서 땅 끝까지) 894페이지, 2권 화보집(북녘 하늘에 십자가를 세우기까지) 894페이지, 우연찮게 페이지 수도 동일하다. 산수연(傘壽宴80세) 때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대화 형식으로 서술된 김 장로의 팔십 생애의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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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덕 장로는 80인생을 두 페이지로 나눈다면 한 페이지 40년은 가정과 사업을 위한 육신의 삶이고, 다른 한 페이지는 오직 하나님께 이끌리어 복음 사업에 헌신하는 영적인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김 장로는 본인의 경험들이 후세대들에게 민족복음화를 이루어 가는 좋은 자료와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스토리 구성은 최재영 목사가 묻고 김용덕 장로가 대답하는 형식을 취했다. 최 목사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남-북을 왕래하며 통일운동과 대북사업을 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10년 동안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마음이 통했다.

예장통합 제107회 총회장(좌)과 저술 협력자(우)  

최 목사가 보는 김용덕 장로는 이 시대의 걸출한 신앙인이다. 이 책은 전체 한국교회의 자화상이자 통일 열정을 가늠하는 산 자료가 될 것이라 예언했다. 더불어 김 장로는 한국교회의 보배이자 자존심이며, 북측에서 바라볼 때는 남북교류의 아이콘이자 훌륭한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에필로그에서 최 목사는 김용덕 장로의 생애와 사상을 한마디로 '땅 끝 영성'이라 명명했다. 김 장로는 북한을 성경에서 말하는 땅 끝으로 보았다. 또한 가까이에서 김 장로와 30여년 동역했던 유종만 목사는 김 장로를 세 가지의 모습으로 그렸다. 첫째 책임감이 투철하신 분이다. 둘째 문제 해결의 탁월한 지도력을 갖춘 분이다. 셋째 투철한 사명 의식을 지닌 분이다.

김용덕 장로의 북방선교 도화선은 사랑의 목회자이자 한국교회의 어른이신 안동교회 고 김기수 목사(전 총회장 영곡)이다. 김용덕 장로가 대구에서 외롭고 힘들게 사업하는 가운데 만난 목사가 김기수 목사였고, 아홉 살 연상이어서 35년 동안 "내 동생 김용덕 집사! 내 동생 김용덕 장로!" 호형호제하며 많은 지도편달을 받았다.

김용덕 장로의 큰 동역자요 후원자는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은파)였다. 김용덕 장로가 북한선교 사역 30년이라는 이름의 기차는 앞에서 김용덕 장로가 이끌고 뒤에서 김삼환 목사가 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 인간의 힘으로 가능하겠는가 성령의 계획과 역사하심으로 이해되는 부분이다.

김용덕 장로와 감삼환 목사의 관계는 1997년 중국 연길교회당 건축이 끝나고 난 후 동북아선교회(총무 김용덕)가 설립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어 평양봉수교회 건축(7년 걸림)까지 추진된다. 두 사람은 중국 복음화, 북한 복음화 그리고 민족복음화를 위해 애쓴 쌍두마차였다.

김용덕 장로는 1942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소년시절 6.25 전쟁을 겪었고 조부 무릎에서 천자문을 익혔다. 괴질로 가문 식구들이 많이 죽었고 조부와 부친만 생존하게 된다. 조부는 고난 중에도 불심을 지키며 여-순 항쟁과 6.25 전쟁으로 불이 나서 복구와 재건축이 필요한 칠불사 복구에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피가 종교적으로는 달라도 김용덕 장로에게 흘러 30년 동안 국내외에서 교회당을 많이 건축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

그 후 하동에서 자리를 잡고 한지 공장을 운영한 조부와 부친이었다. 어수선한 시기에 조부는 돌아가시고 사업도 주춤되어 김용덕 장로는 부모님과 부산 해운대로 이사를 갔다. 그 후 혈혈단신 상경하여 13년 동안 주경야독하며 고생스러운 삶을 꾸려나간다.

15년은 광야의 삶이었고 인생의 쓴 맛과 단 맛을 맛 본 담금질의 시간들이었다. 서울에서 삶을 정리하고 부산 해운대로 복귀한다. 무일푼 이었지만, 다른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담대하게 장인어른에게 재가를 얻어 교제 3년 만에 부잣집 딸과 결혼한다.

결혼 후 아비 집과 본토를 떠난 아브라함처럼 아내와 함께 대구에 와서 '기독교문화사'를 차린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업이 확장되어 춘강은 상경하게 되고 그 때부터 금호중앙교회를 섬기며 원로장로까지 이르렀다.

김용덕 장로는 아내 최 권사와 연애 3년 포함하여 2022년 현재 무려 55년을 동고동락하며 살고 있다. 아내 사랑은 극진하다. 김 장로가 외아들이어서 아내는 시부모를 45년 동안 모시고 살았고 자녀들을 양육하고 교회권사로서 신앙생활과 교회봉사도 잘했다.

아내 최 권사는 남편을 존경한다고 했고, 김장로도 아내 최 권사를 존경한다고 했다. "좋은 아내는 남편이 탄 배에 돛이 되어 그 남편을 항해시킨다." 부창부수로다. 아내의 내조 덕택으로 문서선교와 북방선교를 잘 할 수 있었다.

김 장로는 슬하에 3남매(1녀2남)을 두었으며 자녀들은 결혼하여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 덕분에 신앙인으로 각 처소에서 잘 살고 있다. 아마도 아내 최 권사가 아니었으면 김 장로는 사업뿐만 아니라 북방선교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김 장로의 북방선교의 7할은 아내 최 권사의 몫이라도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김 장로의 기억력은 탁월하다. 기나긴 북방선교의 목소리를 어제 일처럼 기억하며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김 장로의 마음 밭에 선교현장을 아로새겼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복음화를 진행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건물도 아니고 바로 '사람'이다 는 것을 김 장로는 알고 있었고, 그래서 '영원한 현역'으로 헌신된 한 사람을 찾고 있다.

김 장로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당신의 고백이 되기를 소원하며 이런 기도를 언제나 간절히 드린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김용덕 장로의 책이 통일의 봄바람이 불어 얼어붙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녹이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리라 본다. 녹이면 강물이 불어나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80년 생애를 다룬 이 책은 향후 북방선교사역 후배들과 8천만 겨레가 통일의 강을 건너고자 할 때 여정에 들고 다녀할 나침반이자 로드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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