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우리는 소아시아 성도들이 직면해야 했던 정치·종교적 도전 곧 황제숭배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계시록 12장을 보면, 하늘의 전쟁에서 패배한 용(龍, 옛뱀, 사탄)이 땅으로 내어 쫓기고, 분풀이 할 대상으로 교회 성도들을 주목한다(계12:17).
이어진 계시록 13장에서 용은 여자의 후손 곧 교회의 성도들을 박해하고자 자신의 대리자를 내세운다. 이 용의 대리자로 등장하는 짐승이 그 유명한 666짐승이다(13:17-18).
요한계시록의 상황(context): 종교혼합주의의 도전(3) - 황제숭배
요한계시록의 666 짐승의 정체에 대해 많은 주장이 제기되었다. 천주교 교황, 레이건 대통령, 히틀러, 빌게이츠, 컴퓨터 바코드, 베리칩, 적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들이 있어 왔다. 이 가운데 한국의 성도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해석은 ‘666이 컴퓨터 바코드란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로 666과 컴퓨터 바코드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이단·사이비에서 666이라고 분석하는 컴퓨터 바코드의 3개 줄은 숫자 6과는 무관한 가이드라인[guideline]일 뿐이다). 더구나 계시록 본문은 숫자 666이 기계의 수가 아니라 분명히 ‘사람의 수’라고 밝히고 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13:18). 다시 말해서 사람의 이름을 숫자로 표현한 ‘게마트리아’(gematria)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보편적으로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지만, 2천 년 전 로마 사람들은 로마 숫자를 사용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알파벳으로 숫자를 표현하곤 했는데, 우리 식으로 예를 들자면, ‘ㄱ’은 1, ‘ㄴ’은 2, ‘ㄷ’은 3, ‘ㄹ’은 4라는 식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단어나 사람의 이름도 각각의 자음과 모음에 해당하는 숫자들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숫자들의 ‘합’(合)으로 단어나 사람의 이름을 대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런 방식을 바로 게마트리아(gematria)라고 한다.
그렇다면 666으로 변환 될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은 무엇일까? 범위를 좁히기 위해 666 짐승에 대한 계시록의 묘사를 조금 더 살펴보자. 계13:7을 보면 666 짐승은 용(龍, 사탄)으로부터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는다. 또한 계16:10에서 이 짐승은 ‘왕좌’를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와 “그의 왕좌”라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666 짐승은 정치적인 존재, 곧 당시의 로마 황제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로마황제 가운데 그 이름의 게마트리아(gematria)가 666인 사람은 누구일까? 다수의 성서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그 대상은 바로 ‘네로 황제’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네로 황제’(Nero Caesar)는 라틴어식 표기이다. 로마 제국의 공용어는 라틴어와 헬라어였기 때문에, 네로 황제를 헬라어식 표기로 바꾸면 ‘네론 황제’(Νέρων Καῖσαρ)가 된다. 양자를 비교해보면, 전자는 우리말 받침 ‘ㄴ’에 해당하는 음가가 없다.
이를 염두에 두고, ‘네론 황제’(Νέρων Καῖσαρ)와 ‘네로 황제’(Nero Caesar) 각각을 히브리어로 음역한 후, 각 글자에 해당하는 숫자들을 더하면, 전자는 666이 되고, 후자는 히브리어 ‘ㄴ’에 해당하는 숫자 50이 빠지면서 616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말 개역개정에는 짐승의 수가 666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 짐승의 수가 616이라고 기록된 신약 사본들도 있다는 것이다(ex. 에프라임 사본, 파피루스 115번 사본 등).
이러한 사본적 이문(異文)들은 계시록의 짐승이 네로라는 사실을 한층 더 지지해준다.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와 “왕좌”를 가진 정치적 존재, 곧 주후 1세기 로마의 황제 중에 그 이름의 게마트리아가 666과 616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인물은 네로 황제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계시록은 왜 사탄의 대리자로 네로 황제를 꼽은 것일까? 그 이유는 네로 황제가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에 신호탄을 쏘아올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초기에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주(主) 세력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런데 네로가 당시 로마 대 화재(AD 64)의 배후로 기독교인들을 지목하면서, 이후로는 제국이 달려들어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한다. 주후 1세기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가 자신의 연대기(Annals 15.44)에 이 사건을 기록할 정도로 당시 네로의 기독교인 박해는 사람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렇다면 그런 네로가 당시 기독교인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겠는가? 그는 악(惡)의 화신이나 사탄의 대리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네로는 한 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네로와 같이 성도들을 박해하거나 잔해(殘害)하는 제2, 제3의 네로들은 계속 등장하게 될 것이다(cf. 계13:3). 이처럼 제국의 박해와 황제 숭배가 점점 성행하는 분위기에서 계시록이 말하는 성도들의 선택은 단 2가지뿐이다: “당신은 배교할 것인가? 아니면 순교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