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믿느냐?”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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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믿느냐?”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 설교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4.04.01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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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11장 25-26절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요한1서 5:11~13 말씀,
이 철 목사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br>
이 철 목사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2024년 한국교회 부활절 설교전문(본문 요한복음 11장 25-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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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새 봄처럼 어김없이 찾아온 주님의 부활 소식은 온 세상이 함께 기뻐할 인류의 참 희망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넘어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부활의 벅찬 감격이 오늘 예배에 함께 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에게 같이 하시길 기도합니다. 또한, 해외의 모든 동포들과 북한 동포들에게까지 희망의 복음으로 전해지길 기도합니다.

한국교회는 139년 전 부활주일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본국으로 보낸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부활주일에 제물포 항구에 도착한 직후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도착했다. 오늘 사망의 빗장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이 얽매여 있는 굴레를 끊으사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옵소서!”

아펜젤러 선교사의 기도는 우리나라에서 부활신앙으로 응답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근대문화를 꽃피우고, 민족정신을 일깨워 민족수난의 현장에서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원동력이 기독교였고, 그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신앙입니다.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은 한반도에 기독교복음이 전해진 지 30년 조금 넘은 초창기였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의 숫자는 15만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1%였습니다. 당신 천도교 신자가 1백만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기독교는 소수종교였습니다.

그럼에도 기독교는 3.1운동의 모든 과정에서 주도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교회가 들어간 곳에서는 어김없이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선교사의 보고도 있습니다. 교회 종소리는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모두에게 만세 부르러 교회에 나오라는 신호가 될 정도였습니다.

교회와 기독교학교는 3.1운동의 요람이고 거점이었습니다. 3.1운동이후 기독교에 대해 의심하며, 불신하고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이, 믿지 않던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기독교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와 민족도 달라졌습니다.

오래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삼일절 9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움에서 한상권 교수는 삼일운동의 의미를 “만세 전에는 ‘공동묘지’였던 조선사회가 만세 후 ‘새로운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이 임금에서 백성으로 바뀌었습니다. 한마디로 국권을 빼앗긴 ‘아픔의 역사’에서 주권을 되찾는 ‘피의 역사’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요약하였습니다.

유관순의 매봉교회, 희생으로 얼룩진 제암리교회, 남궁억의 무궁화동산 한서교회, 최용신의 샘골교회 등 눈물과 피로 쓴 믿음의 역사는 결국 어둠을 몰아내고 환한 광복의 불을 밝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역사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3.1운동은 나라와 민족의 암울한 시기에 ‘봄’을 가져다 준 신앙운동이었습니다. 이 신앙의 핵심이 바로 부활신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은 ‘부활’과 ‘생명’에 대해 알려줍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것은 부활,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은 생명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 물으십니다. 부활과 영생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부활논쟁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2:23-33을 보면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신명기 25:5-10에 나오는 자식없이 죽은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이름으로 가문과 기업을 이을 수 있도록 하는 “계대결혼법”을 언급하면서 일곱 형제가 한 여자와 결혼했는데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 고 묻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없고, 영도 천사도 없고, 천국도 없다고 믿는 철저하게 눈에 보이는 현실에 집중하는 현실론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고 말씀하시면서 구체적으로 부활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20),

또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음을 언급하시면서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두개인들은 성경을 잘못 알고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적인 경험에만 비추어 이해하여 과소평가했다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에서 족보와 역사만 본 것입니다. 이것은 족보임과 동시에 부활의 증거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이들을 살아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간과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정체성은 영원한 생명이요, 부활입니다. 부활은 인간을 전혀 다른 차원의 삶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그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에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6일 후에 변화산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3명의 제자들을 따로 불러 높은 산으로 가신 예수님께서 변형되어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진 모습으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를 하십니다.

3명의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자”고 합니다. 3명의 제자들이 어떻게 오래전에 죽은 모세와 엘리야를 알아보았습니까? 그들은 천국의 문틈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신 후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신 후 등장하는 변화산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어떤 존재가 되실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 변화산에서처첨 변화되셨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분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을 통해 일어난 사건이며, 우리에게 앞으로 일어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소망을 간직하고 오늘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요한1서 5:11~13 말씀을 보십시오.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또 요한복은 3:16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고 생명이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이고, 그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은 하나입니다. 부활이 있어야 영원한 생명을 설명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어야 부활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설명하는 결론입니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고 있는 성육신을 이해할 수 있고,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과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라는 삼위일체는 끝이 없는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을까요?

첫째,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21:4에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소망도, 사랑도 필요없습니다. 모든 것이 완성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눈물이 있는 곳은 이 땅이고 소망도 사랑도 필요한 곳은 이 땅입니다. 살기 편한 세상이라고 하기보다 어려운 세상이라고 합니다. 저출산, 다문화, 취업의 어려움 등 사회적 문제와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상황 등 무한반복적인 정치와 경제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북한의 핵위협에 이상기후현상으로 인한 피해증가 등 곳곳에 다시 살아남에 대한 희망이 간절합니다. 개인, 사회, 기관, 단체 등 우리가 사는 모든 곳에 참된 위로와 소망이 필요합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하루하루 죽어 가는, 노하고 쇠하여 가는 유한한 존재, 비극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요 괴롬이요 슬픔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는 위로가 필요하고 소망이 필요합니다. 위로를 받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돈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 위로가 참된 위로가 되었습니까?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드는 것, 현실로부터 순간적으로 도피하게 하는 것, 그래서 짧디 짧은 꿈같은 시간이 끝나는 즉시 현실의 무게가 가져다주는 중압감을 더 느끼게 만드는 것은 참된 위로가 아닙니다.

참된 위로란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 현실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깨달아 그 현실을 수용하고 극복케 하는 힘입니다. 참된 위로를 주시고 부활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죽음을 이기신 분의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한 분이시기에, 그분의 생명 안에서 모든 사람을 영원히 살려내실 수 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이기에 이 험한 세상에서 매일 그 심령이 지치고 찢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을 뛰어넘어 영원한 생명을 영원토록 소유케 하는 참된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두 번째, 세상의 가치를 뛰어넘는 영원한 가치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죽었다 살아나는 일은 우리의 삶 모든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영원히 사는 일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지금의 나의 삶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으면 전혀 다른 삶의 질이 형성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실망하는 것은 부활과 영생의 사건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내용이 되지못해 삶이 변하지 않고 세상사람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생명이 약동하는 봄에 부활절이 있는 것은 우리 안의 겨울을 떨쳐내고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어려운 ‘오늘’보다 새로운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부활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물질의 넉넉함이 내일을 살아가게 하지 않습니다. 지위가 높아진다고 행복한 내일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새 것은 물질적이거나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내적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이끄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1970년대 싱어송라이터의 선구자적 인물로 그래미 상 알앤비(R&B)부문 최우수상을 3번이나 수상한 빌 위더스는 1938년 흑인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흑인이고 빈민이었기에 온갖 냉대를 받았습니다. 13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18살에 군에 입대하여 9년을 복무하고 제대후에 낮에는 기술자로 일하면서 밤마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에 매진하였습니다.

사회적 차별, 편견, 깊은 가난 속에서 위더스를 지탱해 준 소망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었습니다. 살다보면 고통과 슬픔을 격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내일이 있음을 안다고 노래했고, 그 애절한 노래가 온 세계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했습니다. 그 노래가 Lean on me. ‘나에게 기대세요’라는 노래입니다.

당신이 연약해질 때 나에게 기대세요 내가 당신의 친구가 되어 드릴께요 당신이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내가 도와 드릴께요 당신이 져야 하는 짐이 홀로 감당하기에 버거울 때 내가 달려갈께요 당신이 날 부르기만 하면 내가 당신의 짐을 나누어 져드릴께요 친구가 필요하면 나를 부르세요 날 부르세요

빌 위더스는 어린 시절 교회에서 부르던 찬송가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노랫말에 나오는 ‘나’는 바로 예수님을 가리킨 것입니다. 우리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과 슬픔 속에 있을 때, 인생의 버거운 짐을 홀로 지느라 지탱할 수 없을 때 우리를 도우시고 짐을 함께 져주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빌 위더스가 노래하는 내일은 달력에 나오는 내일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새로운 날, 내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셔서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므로 주어지는 새로운 내일은 어떤 어려움도 슬픔도 가로막지 못한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 위더스는 영원한 가치를 깨달았기에 세상 속에 다른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살면서도 확실하게 구별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고후 4:16에 말씀하신 것처럼 겉사람은 하루하루 낡아져 가지만 속 사람은 날로 새롭게 해 주시는 부활의 예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날마다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가 실재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부활과 영생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사는 것은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부활절은 기독교 달력에서 가장 오래된 절기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유일회적 사건이었으나, 부활의 의미는 결코 일회성 행사에 그칠 수 없습니다. 초대 교회가 고난과 시련을 딛고 부활신앙의 터 위에 굳게 세워진 것처럼, 여러분도 부활신앙으로 거듭나시길 바랍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확신이 없는 믿음은 흔들리는 그릇과 같아서 원하는 것을 담기가 힘들 뿐 아니라 그릇 안의 것까지 쏟아버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부활신앙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의미하고, 하나의 속임수와 같이 여겨지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관심은 바로 믿음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과 영생을 말씀하시면서 물으십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절은 다른 종교에서는 결코 찾아 볼 수 없는 특별하고 신비한 날입니다. 사실 죽음은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불안,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부활을 믿고 축하하는 신앙은 유독 기독교 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으로 여러분의 삶에서 기쁨을 회복하십시오.

부활신앙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영원한 희망을 품는 일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얼마나 희망스럽습니까? 생기가 넘치는 푸른 신앙이고, 따듯한 봄의 신앙입니다. 나중에 죽어보고 행할 약속은 허황되기 짝이 없습니다. 부활신앙은 바로 지금 내 안에서 이루어질 사건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증인으로 부름 받은 우리 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떠한 고난이나, 십자가도 그 너머 부활이 있음을 굳게 믿고 말씀대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합니다. 부활의 참 증인이 되는 길, 거기에 영원한 희망이 있음을 믿는 참된 신앙인의 길이 있습니다. 올해의 부활절이 이 땅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회복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기회가 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쓰임받는 교회로 부활하길 기대합니다.

이 시간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려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 위에 부활하신 주님 은혜가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이 철 목사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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