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장애물 피하는 AI드론 출시 "드론 넘어 로봇 기술 리더가 목표"
각국 기업의 경쟁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게 미국 포천의 ‘글로벌 500대 기업’이다. 이 리스트에 오른 한국 기업 수는 2009년 17개에서 올해 15개로 줄었지만 중국 기업은 같은 기간 37개에서 103개로 급증했다. 리스트에 든 기업 중 ‘창업 15년 이하’인 젊은 기업을 꼽으면 한국은 한 곳도 없다. 중국은 26개에 달한다.
어릴 때부터 무선비행기와 헬리콥터를 좋아한 1980년생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정교한 리모트컨트롤러를 이용해 무선비행기가 좀 더 안정적으로 날게 할 수 없을까 생각해왔다. 2006년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회사를 세웠고, 무선 비행체에 카메라를 결합했더니 블루오션이 생겨났다.
세계 드론(무인항공기) 시장 1위 중국의 DJI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왕타오(汪滔·영문 프랭크 왕)의 얘기다.
◆1년 만에 직원 두 배로 늘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으로 시작한 DJI가 본격적인 매출을 올린 건 2012년부터다. 2012년 2600만달러이던 매출은 지난해 10억달러로 치솟았다. 올해는 16억달러가 예상된다. 급팽창하는 세계 민간용 드론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덕분이다. 창업 10년 만에 기업가치는 100억달러(약 12조원)를 넘었다.
지난 10일 중국 선전에 있는 DJI 본사를 찾았다. 사무실은 방금 지은 듯 깨끗했다. 왕판 홍보이사는 “인력이 급증하다 보니 매년 이사해야 했는데 올해 이곳으로 옮겼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농담이 아니다.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은 DJI의 임직원은 지난해 3500명, 올 상반기 5000명, 지난달 말 현재 6000명이다. 선전 본사엔 이 중 2000명이 일한다. 그중 70%가 넘는 1500명이 연구원이고, 나머지가 재무 인사 등 지원부서다.
◆“우린 기술에 미친 회사”
왕 이사는 DJI의 성공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먼저 기술 중심주의다. 그는 “우리는 기술에 미친 회사”라고 잘라 말했다. “많은 스타트업이 투자받는 데 혈안이 돼 ‘프레젠테이션(PT) 회사’라고 불리지만, 우리는 벤처캐피털(VC)은 물론 언론 접촉도 피한다. 그 대신 모든 돈과 노력을 혁신을 위해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DJI는 칩과 센서를 빼놓고 모든 걸 자체 제작한다. 수백여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기술 중심주의는 제품에서 드러난다. 대표 상품인 팬텀시리즈는 매년 업계를 이끄는 기술을 선보인다. 2012년 처음 출시된 팬텀은 조립 없이 상자에서 꺼내 그대로 날릴 수 있는 드론으로 카메라를 달고 5㎞까지 날았다.
2014년 나온 팬텀2 비전+는 HD카메라와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결합해 라이브 스트리밍을 가능하게 했다. 지난해 출시된 팬텀3는 센서를 통해 스테디캠(공중에서 흔들리지 않고 연속 촬영)이 가능하다. 올 3월 나온 팬텀4에는 인공지능(AI)이 적용됐다. 스스로 장애물을 피하고, 특정 사물을 정해놓으면 알아서 쫓아간다.
휴대용인 매빅은 이런 기능을 다 갖추고도 가볍고 작다. 날면서 7㎞까지 이미지를 송출할 수 있다. 지난해 내놓은 농업용 아그라스MG1은 농약을 10㎏까지 싣고 레이더를 통해 10m 높이로 날면서 농약을 뿌린다. 왕 이사는 “드론산업은 생각외로 기술장벽이 높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폰은 먹통이 되면 껐다가 켜면 되지만 드론은 추락한다. 그는 “절대 먹통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DJI 드론 기술의 핵심”이라며 “AI, 비전센서 등으로 드론이 추락하지 않도록 막는다”고 설명했다.
◆대성공을 부른 할리우드 마케팅
두 번째는 마케팅의 성공이다. 2012년 팬텀을 출시했을 때 DJI는 무작정 미국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로 달려갔다. 스티브 잡스, 제임스 캐머런 등 유명 인사에게 드론을 그냥 줬다. 드론을 처음 접한 이들은 푹 빠졌고, DJI의 드론은 ‘빅뱅이론’ ‘사우스파크’ ‘에이전트 오브 실드’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거나 제작에 쓰이게 됐다. 이는 DJI를 세계 드론의 선두주자로 각인시켰다. 왕 이사는 “아주 똑똑한 접근이었고 대성공을 거뒀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중국판 실리콘밸리’인 선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전 화창베이(華强北)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부품 상가 밀집지역이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순식간에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다. DJI 외에도 화웨이, 텐센트, ZTE, 비야디(BYD), 오포 등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선전은 세계 드론의 메카이기도 하다. 세계 600여개 드론 회사 가운데 절반인 300여개가 모여 있다. 왕 이사는 “중국 내 드론 개발자의 99%가 선전에 있다고 보면 된다”며 “사실 이건 DJI 효과”라고 말했다.
◆드론에서 로봇으로
DJI는 화재 진압, 농업, 구조 및 수색 등 다양한 용도의 드론을 개발 중이다. 왕 이사는 “매일 유튜브에 DJI 드론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해 찍은 동영상이 올라온다”며 “거기서 영감을 받아 개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DJI는 드론의 새 용도를 발견하기 위해 애플 마블 포드 등 많은 회사와 협업하고 있다.
DJI의 꿈은 드론에서 끝나지 않는다. DJI는 세계 최대 로봇 경연대회 중 하나인 로보마스터스(RoboMasters)를 열고 있다. 매년 선전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200개 대학생 팀이 직접 제작한 로봇으로 대결하는 로봇 배틀이다. 각 팀은 보병, 드론, 수비용 등 다섯 가지 유형의 로봇을 이용해 상대방을 물리쳐야 한다. 복잡한 움직임뿐 아니라 AI, 자동인식 기능 등이 요구된다. DJI는 입상자에게 입사 혜택을 준다. 왕 이사는 “DJI의 비전은 로봇 기술의 리더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가 끝날 즈음 일본 기자들이 “일본 경쟁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사실 잘 모르겠다. 열심히 하면 일본 업체들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말을 맺었다. 출처 : 베이징·선전=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