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일, 초막절. 이정권 목사(예장통합 총회세계선교부 전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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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일, 초막절. 이정권 목사(예장통합 총회세계선교부 전 총무)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1.07.0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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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은 역전의 절기이기도 하다. 즉,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간 날을 기념하기에 광야에서 옥토로의 역전이다. 비천했던 과거에서 풍부한 현재로의 역전이다. 광야의 바라만 보던 꿈에서 온 몸으로 느끼는 현실로의 역전이다.
예수 재림  이미지

절기는 시간 속에 예수님을 보여준다. 절기는 봄의 절기와 가을의 절기로 구분되는데, 봄의 절기는 유월절(무교절), 초실절, 오순절이 있고, 가을의 절기는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이 있다. 오늘은 속죄일과 초막절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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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일 (욤 키푸르, 대 속죄일, 7월10일, 죄를 한날에 속하는 은혜의 날)

구약의 속죄일은 구약성경 레위기 23:26-32처럼 여호와 앞에 속죄일이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날이다(레16:30, 레16:34). 지성소가 열려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하나님의 임재의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속죄소 앞에서 이스라엘 온 민족의 죄를 용서하시고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힘입는 날이다.

또한 속죄일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샤밧 샤바톤, 레16:29-31)이다. 안식일은 히브리어로 샤밧이라고 한다. 안식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며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신뢰하고 쉬는 것이다.

신약의 속죄일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열리는 사건이 있다(막15:37-38). 이는 거룩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임재의 지성소가 항상, 누구에게나 열린 것을 뜻한다.

예슈아는 피 흘림으로 죄와 사망에 묶인 사람들을 구원하신다. 마27:50-54의 사건을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력 7월 10일, 속죄일에 일어나는 일과 예슈아의 십자가 사건을 연결하고 있다(히 9:3-5,7,12,28, 10:19-20, 4:15-16).

레16:8-10에는, 속죄를 위해 염소 두 마리를 준비해서 제비를 뽑는다. 하나는 여호와를 위해서, 다른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것이다. 아사셀 염소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죄를 머리에 짊어지고 회막 밖, 성문 밖으로 내쳐지게 된다(레16:20-22). 죄를 지으면 죄를 깨우치고 책망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율법과 선한 양심이다(롬2:14-15). 속죄일의 두 마리 염소의 의미를 단번에 이루고 성취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다(히9:13-14, 히10:22).

속죄일의 특징 중 하나는 ‘전국적인 나팔소리’이다(레25:9). 요한계시록의 일곱 나팔은 하나님의 재앙과 화를 알리는 소리이고, 마지막 나팔 소리는 주의 재림과 부활, 휴거의 신호탄으로 등장한다(살전 4:16-17, 고전 15:51-52). 바울 사도는 부활과 휴거는 마지막 나팔에 일어난다고 한다(계10:7,계11:15-19).

하나님의 구속사의 섭리와 경륜은 비밀이고 신비이기도 하다(롬 11:25-27). 21C 오늘날에, 이스라엘이 돌아오며, 다시 나라로 서며, 예루살렘이 회복되며, 다시 그들의 왕 메시아 예슈아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전개되고 있다.

초림의 예슈아의 십자가 사건은 유월절에 이뤄졌고, 지성소 휘장을 여신 것도 유월절에 이뤄졌다. 속죄일에 요구되는 모든 제사는 미리 성취되었다.(히9:23-26, 히4:14,16, 히10:19-20) 그러나 속죄일의 전부의 성취는 아직 재림으로 남아 있다.

구속의 완성은 Already(이미)이지만 Not Yet(아직 아닌)이다. 우리 죽을 몸의 구속,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고 재림의 주와 함께 다스리는 온전한 구속이 있다(롬8:23-25, 고전15:51-52). 주님의 재림은 마지막 나팔, 전 세계적 나팔소리, 온전한 속죄, 구원의 완성을 이루실 것이다(히9:27-28, 눅21:27-28).

필자 이정권 목사

초막절(쑤콧, 장막절, 수장절, 7.15-22일)

구약의 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의 나뭇가지와 풀로 만든 초막집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장막절이라고도 한다. 쑤카, 쑤콧(복수)은 일시적이고 허름한 광야 전용 거처이며, 광야의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외하며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절기이다(레23:33-36, 39-40, 42-43).

가을과 추수 때와 감사의 때인 초막절(신16:13-17)은 택하신 곳에서, 노비, 객, 고아, 과부 등과 함께, 즐겁게, 빈손이 아닌 힘대로 드리며 지키는 절기이다. 초막절은 유월절(무교절), 오순절(칠칠절)과 함께 이스라엘 3대 명절이다.

초막절은 역전의 절기이기도 하다. 즉,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간 날을 기념하기에 광야에서 옥토로의 역전이다. 비천했던 과거에서 풍부한 현재로의 역전이다. 광야의 바라만 보던 꿈에서 온 몸으로 느끼는 현실로의 역전이다.

또한 초막절에는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듯 심판의 경고가 있다. 풍부와 편안해지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 있다(신32:13-15). 모든 것이 풍부한 초막절에 새겨야 할 것은 주변 이웃과 하나님과 고아와 과부들과 성전을 섬기는 종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초막절은 즐거움의 절기이고, 감사의 절기이며, 또 메시아의 등장과 통치이다(스가랴서 9장에 초림의 주 예슈아, 14장은 재림의 주 예슈아를 예언하고 있는데 모두 왕이심을 선포한다). 즉, 추수 때는 멀리 떠났던 왕이 돌아 와 심판하며 통치하는 세상 끝날의 절기이다.

신약의 초막절은 주 예슈아의 초림과 재림을 통해 성취되고 완성된다. 요7:2-4에 보면, 초막절에 예슈아의 형제들은 유대로 가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라고 한다. 요7:8-9에는 그러나 예슈아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다고 하며 갈릴리에 머물러 계신다. 7:10에는 예슈아께서 은밀히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7:11-12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예슈아를 찾으며 초막절에 나타날 메시아를 찾고 있었다.

요한복음 7:14에는 명절 중간에 성전에 모습을 드러냈고, 가르치셨다. 7:30은 아직 예수님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실 때가 아니라 한다. 7:31은 이제 사람들은 예슈아께로 향하고 예슈아가 메시아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7:33에는 예슈아께서는 잠시 더 머물다가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7:37-39에 명절 마지막 날, 큰 날에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생수의 강, 성령을 받을 것이라 하신다.

예슈아는 왕이지만, 아직 다윗의 보좌에 앉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영광 보좌 우편에 앉는 기간이 있다. 그 동안에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예슈아는 정하신 때에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시고 그 때는 다윗의 보좌에 앉으실 것이다. 그 때까지는 모든 믿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

이미 성취된 것과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이 있다.

마21:6-11, 요12:12-16은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맞이하는 모습,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왕을 환영하고 맞이하는 초막절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장면들은 유월절 직전에 일어난 모습이다. 왜 초막절이 아닌 유월절 전에 이뤄져야 했을까? 예슈아의 때는 지금이 아니고 장차 올 것이기 때문이다.

초막절 전, 유월절에 왕으로 입성하신 것은 비록 지금 왕이지만, 십자가와 부활 이후 아버지께로 가시고 성령을 보내실 것이기 때문이고, 예슈아께서 장차 만왕의 왕의 왕권을 아버지께 받아서 돌아올 때가 남아 있음을 알게 하시는 것이며, 그 때가 되면 재림의 예슈아를 통해 초막절의 완성을 보게 될 것이다.

초막절은 추수한 것을 거두어 들여 저장한 후에 지키는 절기라서 수장절이라고도 한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13:24-30, 37-43)가 있다. 하나님 나라의 추수는 유월절 양 예슈아의 뿌린 씨로부터 시작된다. 그 씨가 자라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첫 열매가 되었다.

성령으로 익은 열매들, 알곡들이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알곡들의 추수는 세상 끝 천사들의 몫이다. 천사들의 추수로 알곡이 하나님 곳간에 저장되면 초막절 축제가 열린다. 재림의 예슈아께서 초막절의 주로서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메시아의 왕국을 이루실 것이다. 이처럼 유월절(무교절), 오순절, 초막절은 재림의 주 예슈아 안에서 연결되고 완성된다.

예슈아를 계시하는 여호와의 절기는, 반복 행함으로 기억해야 하고(시103: 2-5), 메시아를 바라보면서(눅 9:20), 때를 분별하라는 교훈(롬13:11-14)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정태권의 '시공간 속의 예슈아' 참조 바람.) 글 이정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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