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문을 깨우치게하기 위해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웠습니다. 김 장로님의 기도실 앞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조국이여! 안심하라. 내가 기도하고 있다”
일본제국주의가 극에 달하고 태평양전쟁으로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을 때,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 27살의 한 젊은이가 갇혀 있었습니다. 시인 윤동주(1917.12.30~1945.2.16)였습니다. 그는 지금 중국 연변 조선족자치주 룡정, 그 당시 북간도 화룡 명동촌에서 장로가정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명동소학교, 평양 숭실중학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 교토 도지샤대학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 경찰은 윤동주를 사상범으로 체포하였고 일본 법원은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 형을 선고하여 후쿠오카형무소 수감하였습니다.
그러나 윤동주는 안타깝게도 해방되기 몇 개월 전인 1945년 2월 16일 옥사하고 말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의문의 싸늘한 주검으로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생애를 마쳤습니다. 윤동주는 일본의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어 알 수 없는 주사를 많이 맞았다는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역사적 연구들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민족시인 윤동주의 시에는 ‘십자가’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敎會堂) 꼭대기 / 십자가(十字架)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鐘)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幸福)한 예수·그리스도에게 / 처럼 / 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諾)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젊은 시인은, 교회당 종소리가 잘 들려오지 않는 희망이 없고, 아프고 암담한 우리나라 현실이지만, 교회당 꼭대기에 세워져있는 십자가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시인의 아픔처럼 깊은 고난을 안고 있었던 우리나라를 살려주셨습니다. 대한민국 이 나라에 하늘의 선물인 해방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고난과 고통의 세월 속에서도 하나님은 교회를 남겨 두시고 기도의 뿌리가 깊어지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해방은 되었지만, 6.25 한전 쟁이이 발발하여 땅을 더욱 피폐되었고 산업시설은 남아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당장 먹을 것을 고민하고 살아야 하는 보릿고개를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힘겹게 넘어야 했습니다.
저는 한 동안 원주 제2 가나안 농군학교를 자주 간 적이 있습니다. 학교 위쪽 가파른 산기슭에, 학교 소속의 '성도원'이라는 조용한 기도원이 있었습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전쟁이 끝나고 먹고살기 어려울 때에 1954년 경기도 광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흙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김용기 장로님이 문을 열었습니다. “외적의 침략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난과 부패다. 이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신실한 농군이 필요하다” 김 장로님은 또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짐승들도 제각기 본문을 알고 있다.
소는 쟁기를 매어 놓으면 밭을 갈 줄 알고, 닭은 알을 낳을 줄 알고, 꿀벌은 꿀을 만들 줄 알고, 양은 젖을 만들 줄 알고, 심지어 백합꽃은 향기를 내 뿜고, 포도나무는 포도 열매를 맺는다. 그렇거늘 하물며, 사람으로(태어나) 그 본분을 모른대서야 그걸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본문을 깨우치게하기 위해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웠습니다. 김 장로님의 기도실 앞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조국이여! 안심하라. 내가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나라 사랑의 행함과 나라사랑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교회는 나라 사랑하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나라를 새롭게 만드시기 시작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근대사에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구상에서 다른 나라의 수탈과 전쟁의 비참한 폐허 속에서 경제대국의 자리에 오른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옛날에 미국과 일본과 우리나라를 빗대서 이런 말이 돌아다니던 때도 있었습니다. 미국에는 집집마다 자동차가 한 대씩, 일본은 집집마다 자전거가 한 대 씩, 우리나라는 집집마다 지게가 한 대씩. 그만큼 어렵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었고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 손에 우리나라 핸드폰이 들려져 있고, 우리나라 자동차들이 전 세계 여러 나라를 누비고 다니고 있으며, 바다에는 우리가 만든 배들이 수 도 없이 떠다닙니다.
세계 역사상 경제 원조를 받던 가난한 나라에서 이제는 어려운 나라에 경제 원조를 하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한류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스포츠 영화 음악 음식 이루 말 할 것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잘 살고 강한 나라 남을 돕는 나라가 되었을까요? 여러 학자들의 종합된 결론은
① 첫째로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택했다. ② 두 번째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시장자유 경쟁시스템을 갖추었다. ③ 세 번째로 무역을 통해서 수출산업을 일으켰다. ④ 네 번째로, 지하자원이 부족하고 가진 것이 없지만 교육을 중시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은 본디 근면하고 성실하다. 한 번 해보자는 각오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경제만 대국이 된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선교적으로도 대국이 되었습니다. 꼭 100여 년 전 영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20세기 최초의 세계선교대회가 개최되었을 때,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15명의 선교사와 교회지도자가 참석했습니다. 그 때 함께 참석했던 마포삼열(馬布三悅, Samuel A. Moffet, 1864~1939) 선교사는 수많은 세계기독교지도자들이 모인 앞에서 대한민국의 교회와 믿음의 열정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온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코리아의 상황을 발표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소련과 중국 일본의 사이에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주 작은 나라이지만, 곧 영적인 강국이 될 것입니다” 선교사가 찾아오던 나라, 선교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 선교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영적인 강국이 된 것이지요. 기독교 신앙의 역할은 우리나라 발전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지주 역할을 해왔습니다.
인생의 위기는 어려움에서 벗어나 먹고 살만 할 때,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찾아오는 때가 많습니다. 공동체와 한 개인의 신앙의 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만을 바라보고 40년 동안 광야 생활 할 때는, 삶의 곤고함이 있었지만 큰 위기는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찾아오는 진정한 위기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온 것이다. 그곳에서는 먹고 살만하고, 광야에서와 같이 경제적인 고난이 따라 오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입니다. 집도 있고 먹고 살만한 땅도 있고, 농사도 안정적으로 지울 수 있고.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경고하셨다. “광야생활이 끝나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면, 너희들이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여러 우상들 때문에 나 여호와를 모른다고 할까 하노라”
우리는 우리 민족과 이 땅에 풍요로움과 자유와 복을 주신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망각은 때로는 유익한 일이지만, 신앙적인 망각은 패망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 모아놓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는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신 4:7)
“너희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 그 일들이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신 4:9)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복 주심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들과 신앙을 후대에 전수해야 합니다. 우리 보다 우리 후손들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더 사랑하고, 교회를 더 잘 지키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은 하나님의 역사를 잊지 않고 겸손히 나가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보다 잘 될 때, 겸손해야 하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옛 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가면 예루살렘에서 외곽에 야드바셈이라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이 기념관은 1939년부터 1945년 2차 대전이 끝날 때 까지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학살당한 600만 유대인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기념관입니다. 당시의 처참했던 모습들을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둘러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숙연해지고 깊은 아픔이 스며들어오는지 모릅니다. 곳곳에서 탄식과 한 숨, 그리고 눈물을 닦아 내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기념관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용서 하라. 그러나 잊지 말라”
우리는 과거를 잊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나라 사랑은 국가와 사회공동체를 위해서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민족이 위가 가운데 어려움 속에 있을 때 우리 나라 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던 교회였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나만, 내 가족만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큰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교회, 지극히 이기적인 교인이라는 말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저 북한의 재복음화와 그곳 사람들이 먹고 입고 사는 생활의 향상을 위해서, 그리고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남아 있는 고난의 상처가 아물고 진정한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나라 사랑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민족의 희망의 등불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나라 사랑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회 정의가 잘 흐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공직자들이 국가와 국민이 부여한 책무를 잘 해나가도록 기도하며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 뒤를 이어 나가는 다음 세대가 비전과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오늘을 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소외된 사람, 잘못된 문하 한가운데서 꿈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6월이면 우리 민족의 고난과 아픔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6월이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도록 우리의 자리에서 기도하고 행하며 새로운 내일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