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전투기 F-16s가 지난 24일 러시아 전폭기 수호이(Su)-24를 격추시킨 데 대해 러시아가 사실상 보복에 나섰다.
러시아는 터키 등 연합군이 지원하는 시리아 반군에 대한 공습을 늘렸을 뿐 아니라 터키 국경에서 50㎞ 떨어진 시리아 라타키아 공군 기지에 최신예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배치했다. 시리아는 물론 터키 남부도 사정권 안이다. 영공 수호를 명분으로 내걸었던 터키로선 오히려 이도 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미국 등 연합군도 긴장했다.
서방은 러시아의 보복 조치, 특히 시리아 내 방공력 증강을 우려하고 있다. 2007년부터 실전에 투입된 S-400은 최대 사거리가 400㎞인 미사일로 군용기도 쉽게 타격한다. 중국이 이를 구매해 방공력을 강화할 정도로 성능이 탁월하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S-400은 공중에서 우리 전투기에 잠재적인 위협을 가하는 그 어떤 목표도 파괴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러시아는 순양함도 급파했다. 여기엔 S-300 미사일이 탑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누구에게든 중대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무기 체계”라며 “시리아 내 공습 작전에 큰 우려가 제기된다”고 말했다. 터키는 물론 미국·프랑스의 작전 능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BBC방송은 “다시 도발 말라는 러시아의 강력한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6일 모스크바 주재 신임 대사들과 만나 “터키는 등에 비수를 꽂는 기만적인 행동을 하고도 사과하거나 격추된 전폭기에 대해 배상하지 않고 있다”며 “터키 정부가 고의적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는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터키는 테러의 공범자”라고 비난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이날 터키와의 모든 합작 투자 계획을 취소하고 터키산 농산물 수입을 제한하라고 지시했다. 러시아 농무부는 이날 터키 농산물의 15%가 러시아의 안전 기준에 못 미친다며 추가적인 검역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터키 농산물을 실은 수백 대의 트럭들이 러시아 국경에서 발이 묶였다.
이에 대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대응은 감정적이며 적절하지 않다”고 비난했다. 그는 러시아가 “터키가 IS로부터 원유와 천연가스를 사들이고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러시아 포함)이 IS의 재정과 군사력의 진짜 원천”이라고 지적했다.
터키는 러시아의 전력 증강에 대응해 25일 시리아 접경 지역 야일라다그에 자주포 부대를 배치했다. 터키 군은 이와 함께 이날 자신들이 격추한 러시아 전폭기에 보낸 메시지가 담긴 오디오 파일을 공개했다. 영어로 “터키 공군이다. 지금 터키 영공으로 접근하고 있으니 즉각 남쪽으로 기수를 돌려라”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전폭기에서 탈출했다가 구출된 부조종사인 콘스탄틴 무라흐틴 대위가 “무선통신으로든 육안으로든 아무런 경고도 없었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이다. 터키 군은 또 “해당 전폭기의 국적이 불분명했다”거나 “추락 러시아기와 조종사를 찾으려 노력했다”는 말도 했다. 러시아를 노린 행위가 아니란 해명이기도 했다.
일단 터키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우방들은 터키를 감싸는 기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거의 모두가 터키가 왜 이런 심각한 대치를 자초했는지 궁금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출처 : ockham@joongang.co.kr런던=고정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