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닮은 삶 살다간 목회자, 정진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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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닮은 삶 살다간 목회자, 정진경 목사”
  • 박동현 기자/이대웅 기자
  • 승인 2019.09.0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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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아천(雅泉) 정진경 목사 10주기 추모예식

예수님 닮은 생활, 말씀뿐 아니라 삶으로 실천
설교의 뼈도 살도 복음이 바탕, 무게감과 능력
한국교회 가운데, 구령 활동에 누구보다 힘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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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추모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故 아천(雅泉) 정진경 목사 10주기 추모예식이 그가 시무했던 신촌성결교회(담임 박노훈 목사)에서 9월 3일 오전 개최됐다. 故 정진경 목사(1912-2009)는 서울신대와 아주사퍼시픽대학교, 애즈베리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신촌성결교회 당회장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서울신대 이사장, 호서대 이사장, 아주사퍼시픽대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교회연합과 사회활동에도 힘써 월드비전 이사장,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공동회장,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및 명예회장, 한국기독교학술원 이사장, 대한기독교서회 이사장, 한국세계선교협의회 대표회장 및 명예이사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및 명예이사장, 대한성서공회 이사장,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박노훈 목사 집례로 열린 1부 추모예배는 기성 부총회장 한기채 목사(중앙성결교회)의 기도, 드보라찬양대의 찬양 후 예장 통합 증경총회장 림인식 목사(노량진교회 원로)가 ‘주의 은혜라(고전 10:30-11:1)’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림인식 목사는 “아천 정진경 목사님은 국가 존망의 최대 위기였던 1952년 6.25 전쟁 포화 속에서 약관 30세의 나이로 목사안수를 받았고, 전무후무한 최악의 혼란과 고난 속에서 약 40년간 목회를 하셨다”며 “신학교 교수부터 이사장까지 30년간 교육계에서 인재를 양성했고, 교단 총회장을 위시해 한국교회 연합사업과 교파를 초월한 집회를 많이 인도했다. 목회자요 설교가요 부흥사요 학자요 행정가요 교육가인 한국의 버터필드 목사”라고 소개했다.

림 목사는 “그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신, 예수님을 닮은 생활을 시종일관 하셨다. 그리고 말씀뿐 아니라 생활로 보여주며 실천하셨다”며 “영성과 신앙, 즉 삶에 관한 것은 지식이나 연구, 말이나 교육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금 우리 한국교회의 단점은 예수님을 삶으로 닮지 못한 목회자들이, 은혜를 사모하는 역할보다 제자훈련을 하면서 교인들을 피곤하게 해 교인들이 메마르고 있기 때문”며 “진실한 목회와 교회 생활은 예수님을 삶으로 닮은 목회자와 함께 교회 생활을 하면서 이뤄진다. 예수님을 그렇게 닮아가는 것이 그의 목회였다”고 회고했다.

▲정진경 목사의 사진 앞에서 림인식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정진경 목사의 사진 앞에서 림인식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림인식 목사는 “교육과 훈련을 통한 노력으로는 참 신앙이 생겨나지 않는다. 참 신앙은 예수님을 ‘미메테스’로 닮은 목회자와 함께 살아가는 데서 이뤄진다”며 “정진경 목사님은 우리 한국교회 속에서 바로 이런 모델이 되어 주셨다”고 평가했다.

림 목사는 “그는 대(大)목회자였다. 천성이 예수님을 닮았다. 매우 급한 성격이면서 싸우지 않았다. 정의감이 강하면서도 독선과 배타가 없었다. 누구나 사랑하면서도 불가근 불가원을 지켰다”며 “박식하면서도 일생 배움의 자세로 살았다. 권력욕 물질욕 명예욕이 없었고, 지방색이나 신앙적 편견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사생활은 언제나 깨끗했고 목회자로서 투명하고 선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진경 목사의 설교는 누구나 알아듣기 쉬웠지만, 내용은 깊었다. 예리한 통찰력으로 누구에게나 긍정적으로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며 “설교의 뼈도 살도 복음이 바탕이 되었기에, 무게감이 있고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새 원고를 써서 설교할 정도로 매번 연구하는 학자적 설교가였다”고 했다.

림 목사는 “개교회나 교회 행정에 있어 법을 잘 지키면서도,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하는 신뢰받는 행정가였다”며 “표결이 필요없을 만큼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며 인도했다. 충분한 토의를 통해 합의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많은 기도로 경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성심을 다해 중재하며 화합했다”고 전했다.

또 “그의 목회는 어제나 환경과 조건을 초월해 은혜로웠고 성공적이었다. 신촌성결교회 목회 중 명성을 얻고 교회가 성장했고, 한국교회에서 주목을 받게 됐다”며 “무엇보다 구령에 최선을 다하셨던 것이 예수님 닮는 것의 핵심이었다. 전 세계가 놀랄 정도로 급성장하는 한국교회 한복판에서 구령 활동을 누구보다 힘차게 하셨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한국교회는 정진경 목사를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그를 추모하는 우리 모두 그와 동역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추모와 동시에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의 본대로 예수님을 미메테스로 닮는 주의 종과 성도들이 되시길 바란다”고 했다.

​▲추모예배에 참석한 이들의 모습. ⓒ이대웅 기자​
​▲추모예배에 참석한 이들의 모습. ⓒ이대웅 기자​

추모사도 이어졌다. 곽선희 목사(소망교회 원로)는 “교회의 문제는 학문은 있는데 목회가 없거나, 목회는 있는데 신학이 부족한 것에 있다. 신학 없는 목회, 목회 없는 신학이 되어 교회가 흔들리고 있다”며 “그러나 정진경 목사님은 학자요 목회자였다. 성품도 예수님을 닮은 분이었다. 이러한 분이 우리 앞에 꼭 있어야 하기에, 오늘 더더욱 그립고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원로)는 “정진경 목사님은 어느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든 한국교회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모두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라며 “한경직 목사님이 복음을 위해 시작하신 모든 사역이 반세기 이상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정 목사님이 뒤에서 잘 이어가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호용 장로(대한성서공회 상임이사)는 “정 목사님은 성경을 번역하는 성서공회는 절대 흔들리거나 잘못 되면 안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며 “그만큼 성경을 엄중하게 생각하셨다. 또 기회 있을 때마다 복음은 문화라는 옷을 입고 전해진다며 기독교 문화 확장을 강조하셨다”고 전했다.

장남 정인천 목사는 가족인사에서 “해가 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갔는데, 이번에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들면서 책도 다시 읽어보고 사진도 다시 꺼내보면서 그 기억들이 새로워졌다”며 “지금도 격려해 주시는 교우님들의 사랑에, 그리고 아버지에게 평생 복음 전하는 일을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후 김소엽 권사(대전대 석좌교수)의 추모시 낭독, 준비위원장 한세열 장로의 광고가 이어졌으며,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원로)의 축도로 1부 예배가 마무리됐다.

2부 추모행사에서는 강일구 박사(신촌포럼 위원장)의 인사 및 소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의 기도, 정근모 박사(전 호서대 총장)의 ‘정진경 목사의 생애와 사역’ 강연, 다큐멘터리 상영, 조남국 목사(광명중앙교회 원로)의 폐회기도 등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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