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위기이자 기회.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신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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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위기이자 기회.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신국원
  • 박동현 기자
  • 승인 2019.11.13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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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은 이런 근대적 삶과 문화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핵심으로 합니다. 포스트모던의 비판은 이러한 문화 비전의 근원이며 빛이라고 믿었던 이성의 능력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합니다.

특히 이성이 진리의 기초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그 출발점입니다. 흔히 이런 비판으로 이성에 대한 낙관론을 깨뜨린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트를 “의심의 대가”요, 포스트모던의 선구자라고 부릅니다.
신국원 총신대 명예 교수
신국원 총신대 명예 교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새로운 문화가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지시어'입니다. 서양문화사에서는 16세기부터 20세기 중반 까지를 근대(modern)라 부릅니다. 그 이전은 전근대(pre-modern), 그 이후는 포스트모던(post-modern)로 나눕니다. 포스트모던이란 근대에 대한 비판 또는 이탈 현상을 포괄적으로 부르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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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포스트모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이성의 시대인 근대 문화의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단어 자체가 모더니즘(modernism) 즉 근대 이후를 뜻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근대와의 단절인지 다소 변형된 형태인지는 논란거리입니다. 그래서 접두사 post는 탈(脫) 또는 후(後)로 번역되곤 합니다. 더욱이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재 진행 중인 현상이기 때문에 실체를 규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근대의 이성주의 문화를 넘어서

포스트모던이 근대 이후라면 근대는 어떤 시대인가요? 근대란 16세기 이후 급격히 발전한 과학 기술에 기초를 둔 인본주의적 이성주의 문화를 말합니다. 과학이 급진전하며 전근대 세계관을 깨트려 문화와 삶의 새로운 방향을 열었지요.

근대가 세속적 문화가 된 것은 르네상스를 시발점으로 하는 인본주의 운동이 문화의 대세를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18세기에 일어난 계몽사상은 이제 인간이 어떻게 종교적 믿음을 벗어나 스스로의 자율적인 이성에 따라 살아야 할지를 실천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는 고대나 중세와는 다른 정신세계와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근대는

첫째 과학적 이성을 삶의 기초로 여기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성은 고대나 중세까지 주어진 우주의 원리나 계시를 이해하는 능력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이성은 자율적 주체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성으로 무장한 근대인은 세계의 질서와 구조를 파악해 알 뿐 아니라 스스로 제정한 질서를 세계에 부과하는 주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무신론적 세계관에 따라 우주가 커다란 기계로 인식된 상황에서 인간이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을 주체로 생각하고 다른 존재를 대상으로 간주하는 대립적 사고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점차 굳어졌습니다.

둘째로, 근대는 자연을 스스로 존재하고 작동하는 질서의 체계로 보았습니다. 이런 자연관은 기적이나 섭리, 그리고 계시 같은 초자연의 간섭에 대립하는 개념입니다. 근대의 계몽사상의 자연의 개념에는 기독교가 강조하는 인간 타락에 대한 비판과 반대도 담겨있습니다. 자연은 이제 인간의 잠재적 능력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개발될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졌습니다.

셋째로 근대는 그런 인간의 능력에 기초하여 전개될 미래에 대한 진보에 대한 낙관적 믿음의 체계였습니다. 고대 희랍인들은 역사를 끝없는 순환으로 보고,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서 역사의 완성을 기대합니다.

반면 근대사상은 이성에 의한 진보의 역사관을 제시합니다. 근대인들은 인간이 점차 이성의 효과적 활용을 통해서 물리적 환경은 물론이고 사회와 문화에 대한 조정 능력을 늘려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인본주의와 이성, 그리고 진보에 대한 믿음 위에 서있는 근대는 “자신감의 문화(a culture of confidence)"입니다.

포스트모던적 비판

포스트모던은 이런 근대적 삶과 문화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핵심으로 합니다. 포스트모던의 비판은 이러한 문화 비전의 근원이며 빛이라고 믿었던 이성의 능력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합니다.

특히 이성이 진리의 기초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그 출발점입니다. 흔히 이런 비판으로 이성에 대한 낙관론을 깨뜨린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트를 “의심의 대가”요, 포스트모던의 선구자라고 부릅니다.

니체는 이성이 객관적이지 않음을 주장했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사고 방식이 매우 다른 것처럼 노인과 청년의 합리성은 크게 차이를 보입니다. “태극기”와 “촛불” 집회는 완전히 다른 논리와 기준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마르크스는 아예 이성 자체가 경제적 지위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성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 또한 현실을 살펴볼 때 일리가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더 나아가서 이성의 기반인 의식 자체가 성적 충동을 본질로 하는 무의식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이성의 중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철저한 불신입니다. 이런 급진적 비판이 힘을 얻게 되자 오늘날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이성적 기준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성은 보편적 진리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믿음이 널리 퍼진 것이 포스트모던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상적 원인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서구의 경우 20 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근대 문화의 기초에 해당하는 과학 기술에 대한 비판은 날로 더욱 깊고도 넓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문명의 전면적 파괴를 몰고 온 세계대전이 준 충격은 그 무엇으로도 완화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일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지성인들 사이에 팽배했던 근대주의적 이상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에 이은 이념 분쟁과, 문화, 정치, 사회적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과학의 한계에 대한 의식과 자원 고갈, 인구와 환경 문제는 위기의식을 부추기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불길한 현상들은 과학적 문화가 유토피아를 가져오기보다 문명 전체를 멸망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을 몰고 왔지요. 그리고 이 위기의 뿌리에 근대문명을 지배해온 계몽사상과 과학주의적 세계관의 문제가 있다는 각성이 뒤따라 일어났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점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은 바로 근대를 정초했던 이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에서 비롯됩니다. 사실 근대가 모든 믿음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했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일 수 있습니다. 이성에 대한 믿음 역시 신앙임을 깨닫는 순간 그것을 의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믿을 수 없고 그를 대신할 이성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믿음의 상실이 아닙니다. 소박한 의심도 아닙니다. 신은 물론 이성에 대한 믿음도 이면에 불순한 동기가 깔려있다는 혐의를 둔 의심입니다. 이제는 매사에 신뢰나 믿음 대신 불신이 주도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특히 절대적 진리에 대한 주장은 모두 의심과 혐의의 대상이 됩니다. 모든 진리가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의심의 대상이 되어 해체의 칼날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성에 신뢰를 건 문화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대안입니다. 이성의 중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비판이 곧 상대주의와 그에 이은 회의주의나 비관적 견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주장의 핵심은 근대 문화에 대한 문제점 인식이나 한계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는 옳습니다. 하지만 그 해결에 있어 다양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은 객관주의를 피하기 위해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급진적 비판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는 “공통적 참조틀 찾기”의 곤란함과 “실재에의 권리 획득을 위한 수많은 소리의 다수성으로 특징 지워집니다."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사상가인 리요타르는 포스트모던은 모든 것을 정당성을 부정하는 니힐리즘, 아나키즘, 다원주의의 싸움 이후의 “완화의 시대”요, 이제는 “차이점에 대한 감수성”과 “총체성에 대한 전쟁”을 수반하는 시대라고 규정합니다.

오늘날엔 모두가 동의하여 그에 호소하여 논쟁을 종결할 수 있는 공통적 토대가 사라지고 보편적 세계관이 사라졌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이것을 억압적인 보편성과 객관성이 해체되고 차이에 대한 존중과 지역적이고 개별성이 부각되는 경축할 현상이라고 주장합니다.

기독교적 평가

반면에 많은 기독교 학자들은 포스트모던을 매우 심각한 위기라고 진단합니다. 포스트모던은 근대라는 거대한 문화의 틀이 해체되는 현상으로 삶의 “터”가 무너짐(시11:3)에 비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성주의 문화의 해체라는 사실을 축하할 일이 아니라 훨씬 위험한 감성주의의 위협이 따라 올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사실 오늘의 문화적 위협은 반이성주의와 감성적 쾌락주의 문화에서 비롯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성주의와 그것에 기초한 객관주의가 무너지고 찾아온 폭넓은 세계관에는 숨은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는 절대성을 표방하는 모든 것을 비판하고 배격하는 기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이성적 체계를 권력의 산물로 규정하고 극단적 비판을 지향하는 해체주의는 명백히 상대주의와 비관론적 허무주의를 배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을 기회인 것으로 보는 시각도 근거가 없지 않습니다. 근대의 토대인 계몽적 인본주의가 붕괴한 이후 그것과 타협하지 않았던 기독교 신앙에 새로운 기회가 오고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과학이나 인본사상이 실패를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초자연적 기독교 신앙의 위상이 높아진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은 위기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해체된 바로 그 터가 인본주의적이고 반기독교적인 문화의 기초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것의 무너짐은 새로운 문화의 도래를 기대해볼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오는 복합적 움직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과학주의적 독선 등을 반대하고, 종교, 예술 등 위축된 삶의 요소를 복원하고 활성화 하는 면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향은 동시에 역시 부정적으로도 작용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는 좋던 싫던 “포스트모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늘 그랬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말씀 대로 시대의 영을 분별하는 지혜와 복음으로 맞설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급변하는 사회와 문화가 혼란할수록 “세상 속”에 있으되 “세상의 것이 아닌”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가는 일에 우리 모두 힘써야 하지 않을까요? 

글 임자 신국원교수는 총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삼일교회 협동목사, 미국 칼빈대학교 헨리미터센터 펠로우 교수, 미국 칼빈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Institute of Communications Research 객원연구교수, 미국 앤아버 성서교회 담임목사, 왕십리교회 청년지도 목사, 분당중앙교회 협동목사/설교목사, 성덕중앙교회 설교목사, 미국 톨리도 한인교회 설교목사, 충신교회 설교 봉사로 섬겨왔다.

참고 :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또는 후기 모더니즘은 일반적으로 모더니즘 후(라틴어 post: 뒤, 후)의 서양의 사회, 문화, 예술의 총체적 운동을 일컫는다. 모더니즘의 이성중심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내포하고 있는 사상적 경향의 총칭이다. 2차 세계대전 및 여성운동, 학생운동, 흑인민권운동과 구조주의 이후 일어난 해체현상의 영향을 받았다. 키워드로는 데리다가 주장한 해체(deconstruction, 탈구축)인데 탈중심적 다원적(多元的) 사고, 탈이성적 사고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특징으로 1960년대 프랑스와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데리다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보드리야르 등이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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