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예레반(수도) '아르센 바르다 얀 (Arsen Vardanyan) 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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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예레반(수도) '아르센 바르다 얀 (Arsen Vardanyan) 의 메시지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11.04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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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종교구성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정교회 92.5% 그 외 기독교 2.3% 야지디교 0.8% 기타 0.4% 무종교 4.0%  아르메니아인의 성산(聖山)인 아라라트 산은, 성서에 따르면 대홍수가 끝났을 때 노아의 방주(方舟)가 표착(漂着)한 곳이라고 한다. 이 산을 바라보는 코르 비랍 수도원은 7세기에 세워졌다.
편지를 쓴 아르센 바르다 얀 (Arsen Vardanyan)
편지를 쓴 아르센 바르다 얀 (Arsen Vardanyan)

편집자 주 : 아래 편지는 아르메니아 예레반(수도)에 거주하는
아르센 바르다 얀 (Arsen Vardanyan) 의 편지를, 아누시 아슬 리베 키안 아트 루니(anush aslibekyan artsruni)가 11월3일 밤에 기자에게 영어 메시지로 보내 온 내용을 한국어로 반역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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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내용, 이 편지는 아르메니아 교사 아르센 바르다 얀 (Arsen Vardanyan) 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디아 무라드'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아래 내용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친애하는 나디아 무라드, 저는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공개서한을 씁니다. 우리 조국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 잔인한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나디아 무라드는 전쟁과 학살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알고 계시기 때문에 대답 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당신이 가진 인간의 가치를 믿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당신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20202년 9월27일부터 지금까지 터키의 군사력 후원으로 아제르바이잔은 스테파나케르트(Stepanakert), 나고르노카라바흐 (Artsakh) 및 Armenia의 다른 많은 도시와 마을에서  평화로운 민간인을 폭격하고 있습니다. 많은 민간인과 군인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집을 떠나 대피소에서 살아야했습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은 끝이 없습니다. 아제르바이잔 군대는 터키에서 파견 한 시리아의 용병과 테러리스트를 전투에 투입 할 뿐만 아니라 나고모-카라바흐 (Nagorno-Karabakh)를 특수 폭탄을 사용하여 민간인 마을 과 숲에 화재를 일으킵니다.

우리국민은 얼굴에 화상을 입고, 다친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불행히도 당신에게 잘 알려진 테러 및 대학살 행위입니다.

우리는 여기(나고르노카라바흐)에 살고 있는 우리 야지디 동포들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그들은 아르메니아 병사들과 함께 우리 국경을 강력하게 수호합니다. 아르메니아는 또한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Yazidi 사람들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진실과 정의를 말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르메니아는 이 전쟁을 먼저 시작하지 않았지만, 아르메니아는 역사적인 고국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고, 적에게 아르차흐 공화국(Artsakh) 국민들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요구 할 것입니다.

이것은 아르메니아 인뿐만 아니라 인류를 위한 전쟁입니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21 세기의 가장 큰 악을 막기 위해 아르차흐 공화국 (Republic of Artsakh) 을 인정하기 위해 모든 행동을 해야 합니다. 60 개 이상의 파괴 된 학교, 10 개 이상의 유치원이 파괴되었지만, 국제 사회가 눈을 꽉 감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의 세계 평화를 위해 테러리즘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를 도운 사람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전쟁이 멈추고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확실히 좋아 지기를 기도 합니다. 우리는 평화로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평화를 기원하며, 아르센 바르다 냐라 문학 교사, 아르메니아, 예레반(수도) 거주

나디아 무라드(가운데)가 이슬람국가(IS)에 붙잡혔다 탈출한 지 3년 만인 2017년 6월1일 고향인 이라크 코조를 방문해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다. 코조 | 로이터연합뉴스나디아 무라드(가운데)가 이슬람국가(IS)에 붙잡혔다 탈출한 지 3년 만인 2017년 6월1일 고향인 이라크 코조를 방문해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다. 코조 | 로이터연합뉴스원문보기: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10052135015#csidx6f12d9e12947c6288261772c439d165
노벨평회상 수상자 나디아 무라드(가운데)가 이슬람국가(IS)에 붙잡혔다 탈출한 지 3년 만인 2017년 6월1일 고향인 이라크 코조를 방문해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역사적으로 아르메니아는 기원전 13세기 무렵, 활동했던 우라르투(아르메니아어: Ուրարտու)의 후손이다. 우라르투 왕국은 한 때 중동을 통일했던 아시리아와 맞설 정도로 강대국이었으나, 기원전 9세기에 메디아 왕국에게 멸망당했다.

메디아 치하에서 저항하던 우라르투인들은 기원전 6세기에 다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에게 지배당한다. 그로부터 우라르투 대신 아르메니아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이후 대아르메니아 왕국을 형성하였다. 중세에는 지금의 터키 남동부를 중심으로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왕국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후 이슬람 세력의 영향권에 들었다가, 근대 들어 러시아 제국령과 오스만 제국령으로 분할되었고, 오스만 제국의 말기 (1915년 - 1923년)에 오스만 제국령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이 살해되었다. 이후 이 곳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빠져나가 아르메니아인 디아스포라가 본격화되었다

아르센 바르다 얀 (Arsen Vardanyan) 편지를 기자에게 보낸 Anush Aslibekyan Artsruni

1918년 러시아령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 민주 공화국으로 독립하였으나, 2년 만에 붉은 군대에 의해 사라지고 일부 세력이 남부 산지를 중심으로 아르메니아 산악 공화국을 만들어 저항했으나 이것도 1년 만에 제압된다. 이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자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을 구성했다가, 1936년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1988년부터 아제르바이잔과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었고, 이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 끝나는 1994년까지 무력 충돌로 나타났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독립하였다. 2014년 10월 유라시아 경제 연합(EEU)에 가입하였다.

아르메니아는 동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 서쪽으로는 터키, 아제르바이잔의 월경지인 나히체반 자치 공화국, 북쪽으로는 조지아, 남쪽은 이란과 맞닿아 있다. 내륙의 바다라는 세반 호를 끼고 있지만, 내륙국이다. 또한 산악지형이 우세하다. 수도는 예레반이다. 10개의 '주(아르메니아어: մարզեր 마르제르)'가 존재한다.

사실상, 대륙성기후에 속한다. 아르메니아는 산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겨울에 눈이 많이 온다. 1월 평균기온은 -10~0도, 7월 평균기온은 20~30도다. 예레반의 경우 여름 평균기온은 25도를 상회하며, 겨울 평균기온은 -6도다. 연간 강우량은 수도 예레반이 330mm 정도이며, 산악지대는 700~900mm로 강우량이 더 많다.

現 아르메니아 대통령 아르멘 사르키샨 現 아르메니아 총리 니콜 파시냔 의원내각제를 실시한다. 의회는 단원제이며 132석 규모이다. 아르메니아는 2013년 2월 18일 대통령 선거에서 유산당(遺産黨: Heritage)이 2위에 머물자 유산당 당원들과 야당지지자들이 대선결과에 불복하면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2015년 12월 6일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안이 통과되었다.

아르메니아인이 인구의 97.9%를 차지하고, 야지디인이 1.3%, 러시아인이 0.5%이다. 그 외 아시리아인, 우크라이나인, 그리스인, 쿠르드인, 조지아인, 벨라루스인 등이 소수 거주한다.

소비에트 연방시대에는 아제리인이 제2의 민족이었으나 (1989년 2.5%)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 따른 긴장으로 이들은 모두 아제르바이잔으로 이주하였다. 그 반대로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에서 넘어온 아르메니아인 피난민들을 받아들였고, 이는 아르메니아의 단일적 특성을 가져왔다.

아르메니아 문자를 쓰는 아르메니아어가 유일한 공용어이다.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통치를 200여 년 간 받은 영향으로 러시아어가 널리 쓰이며, 사실상 제2언어로 간주된다. 2013년 조사에 따르면, 아르메니아인의 95%가 러시아어 지식이 있다고 말했다. (24%는 상급, 59%는 중급지식)

영어 지식이 있다고 말한 사람은 40%였다. (4%는 상급, 16%는 중급, 20%는 기초지식) 그러나 성인의 50%는 영어를 공립중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며, 러시아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44%였다.). 이웃나라 아제르바이잔과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아르메니아에서 러시아어도 흔하게 사용되며 홈페이지에서는 주로 영어, 아르메니아어와 함께 나온다. 한편 아르메니아는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다.

아르메니아 종교구성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정교회 92.5% 그 외 기독교 2.3% 야지디교 0.8% 기타 0.4% 무종교 4.0%  아르메니아인의 성산(聖山)인 아라라트 산은, 성서에 따르면 대홍수가 끝났을 때 노아의 방주(方舟)가 표착(漂着)한 곳이라고 한다. 이 산을 바라보는 코르 비랍 수도원은 7세기에 세워졌다.

인구의 92.5%가 기독교의 일파인 아르메니아 사도교회(司徒敎會: Armenian Apostolic Church)를 믿는다. 시리아 정교회, 콥트 정교회에 비해 의례적이고 보수적인 면이 강하다 아르메니아는 이슬람교 국가의 침입을 받았으면서도 그 영향력이 오히려 역으로 되었기에 기독교 (정교회) 문화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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