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그림자로 산다는 것. 신성욱 교수
상태바
영웅의 그림자로 산다는 것. 신성욱 교수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1.02.05 2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봉수 감독.’ 그는 대학 입학담당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 그렇다면 바꿉시다.” “바꾸다니, 무얼요?” “이건 내 딸의 합격을 취소시켜도 좋으니 황영조를 특기생으로 받아 주시오.” 마라톤 연구를 위해 일본어를 독학으로 마스터했고, 한국 마라톤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건만.
 92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1위를 한 황영조와 정봉수감독(사진왼쪽) 손기정 옹(사진 오른쪽)이 금메달을 들고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출처 : 스포츠서울

1992년 8월 6일, 바르셀로나, 몬주익 동산에서 두 동양인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날씬한 일본인과 가슴이 두텁고 눈이 반짝이는 한국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일본인 모리시타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한국인 황영조의 발걸음은 힘찼다. 마침내 내달리는 황영조, 메인 스타디움에서 이를 예상하고 미리 기다리던 1936년의 마라톤 영웅 손기정옹이 벌떡 일어났다. 전 한국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Like Us on Facebook

미처 TV를 못 본 사람은 아쉬워할 틈이 없었다. 친절하게 방송 3사에서 수십 번 수백 번 되풀이해서 그 뜨거운 장면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보고 또 보고.' 4년 후 8월 4일, 애틀랜타, 올림픽 스타디움 결승 테이프를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는 한 흑인 선수와 한 동양 선수,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동양인, 3초. 올림픽 마라톤 역사상 최소 차로 금메달을 놓친 이봉주.

마라톤 황영조 선수

그러나 그에게는 우레와 같은 갈채가 쏟아졌다. 그 뒤에서 한 마리의 독사가 비둘기의 미소를 띠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은 정봉수 감독. 한국이 연속해서 올림픽에서 우승, 준우승을 차지하자 이제는 누구도 한국이 다시 마라톤 강국으로 올라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 20년 뒤떨어진 한국 마라톤이 순식간에 일본을 젖히고 올림픽을 제패하고도 모자라 준우승까지 한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나오게 된 황영조 뒤에도, 불굴의 사나이 이봉주 뒤에도 한 사람이 꼭 등장했다. 그가 바로 정봉수 감독. 그로 인하여 한국 마라톤은 불과 5년 만에 세계에 우뚝 서게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마라톤만은 황영조, 이봉주, 김완기 모두 도공의 손에 빚어진 도자기에 지나지 않는다. 도공이야 얼마든지 고려청자, 조선백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정봉수 감독의 훈련 방법은 특히 외국인에게 신비의 대상이었다. 중국의 마군단 이상이었다. 마군단은 약물 복용으로 허물어졌지만, 정봉수 사단은 철저한 과학적 훈련으로 외국 전문가에게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를 키우기 위해 강릉까지 다섯 번도 더 찾아간 사람. 스카우트를 조건으로 황영조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자존심을 다 버린 사람.

핑자 신성욱 교수
필자 신성욱 교수

 ‘정봉수 감독.’
그는 대학 입학담당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 그렇다면 바꿉시다.” “바꾸다니, 무얼요?” “이건 내 딸의 합격을 취소시켜도 좋으니 황영조를 특기생으로 받아 주시오.” 마라톤 연구를 위해 일본어를 독학으로 마스터했고, 한국 마라톤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건만..., 

화려한 매스컴에 황영조는 있어도 정봉수는 없었다. 효심 깊은 한국인은 정화수 떠놓고 기도한 마라톤 영웅의 어머니는 잘 기억하지만, 영웅을 키운 스승은 잘 기억하지 않는다.

잘 나면 제가 잘 난 것, 약간의 잔소리를 했을 뿐인 스승은 쓸쓸하게 소주잔이나 기울이고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의 가슴엔 마라톤에 대한 꺼지지 않는 사랑이 불타고 있었다. 이미 세상을 떠나 더는 존재하지 않지만 한국 마라톤과 재능 있는 제자들에 대한 정 감독의 뜨거운 열정과 애정은 지금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영웅의 그림자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이 영웅으로 대중의 찬사를 받기 원한다. 그런 점에서 바울을 세상에 드러내는데 숨은 역할을 했던 바나바의 역할은 더없이 귀해 보인다.

바울을 만나기 전만 해도 바나바는 주역으로 사역했다. 하지만 그를 만난 후 성경은 ‘바나바와 사울’이란 표현에서 ‘바울과 바나바’란 내용으로 뒤바뀐다. 주역이 바뀌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후에 바나바의 이름은 성경에 거의 등장하지 않고 바울의 얘기만 주로 기록될 뿐이다. 하지만 회심한 바울을 드러내고 자신은 그림자로 살아온 바나바야 말로 위대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오늘 나도 그런 그림자가 되길 원한다. 재능 있고 실력 있는 제자들을 많이 많이 키워내어 하나님 나라의 영웅으로 쓰임 받는 일에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다면 내게 있어 큰 기쁨이 되리라. 오늘도 이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보련다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이다.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