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종교개혁과 여성,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기독교사회윤리학)

개혁 신앙은 근현대적 시민을 낳는 촉발점이요 바탕이 되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응시하는 것, 더 이상 꿇고 복종하는 신민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 앞에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라'고 촉구했으니까. 박동현 기자l승인2017.07.0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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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소영 교수 (이화여대, 기독교사회윤리학)

‘종교개혁과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여러 가지 접근이나 강조가 가능하겠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종교개혁의 전개 과정에서 여성들이 어떤 역할을 하였나를 살펴보는 것이리라. 물론 많은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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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개혁가들의 신학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할 뿐만 아니라 여왕, 귀족 등의 신분적 힘을 십분 발휘하여 그들을 보호하고 피난처를 제공한 여성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나바르 공화국의 왕비 마르게르트(Marguerite de Navarre)나 그녀의 딸 쟌느(Jeanne d’Albert)는 프랑스의 개혁신앙인들이었던 위그노를 보호하고 지지했다.

또한 스스로의 신앙적 결단으로 개혁신앙을 선택하고 그 대가로서의 고난을 당당히, 담담히 대면한 여성들도 있었다. 미사에 의무적으로 다섯 번 참석하느니 차라리 성경 다섯 장을 스스로 읽겠다고 선언한 영국의 앤 애스큐(Anne Askew)는 화형을 당했다.

한편, 팜플렛 작가로 활동하며 개혁 신앙의 내용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던 여성들도 있었다. 제네바의 마리 당티에르(Marie Dentiere), 스트라스부르의 카타리나 쉬츠 젤(Katharina Schütz Zell), 바이에른의 아르굴라 폰 그룸바흐(Argula von Grumbach) 등이 작가로서 자신의 소명을 실천했던 여성들이다.

이렇게 종교개혁 과정에서 활발한 공헌을 했으나 가려지고 잊혀진 여성들의 역사를 찾아내고 21세기로 불러오는 것은 물론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여성’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관심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개혁이 바꾸어 놓은 여성 응시 혹은 여성 위상에 관한 것이다.

혁명적 공헌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성서해석이나 윤리담론에 있어 한계 또한 존재한다. 한계를 밝히는 것에 두려울 필요는 없다. 바로 그 지점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우리가 바통을 이어 더 달려야하는 출발선일 테니까.

▲ 백 교수의 특별한 강의를 경청하는 장로들.

1. 종교개혁의 혁명성, 어디까지 혁명적이었나?

종교개혁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사회윤리와 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나는 ‘권위 나눔’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왕과 귀족들, 사제들만 독점했던 성서 해석권이나 예배, 신앙 고백의 권위를 평신도에게 부여한, 아니 돌려준 사건이었으니까.

신민(臣民)에서 시민(市民)으로! 물론 종교개혁 당시부터 전면적으로 실행된 것은 아니었지만, 개혁 신앙은 근현대적 시민을 낳는 촉발점이요 바탕이 되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응시하는 것, 더 이상 꿇고 복종하는 신민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 앞에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서라고 촉구했으니까.

종교개혁의 모토인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총(sola gratia), 오직 성서(sola scriptura)”는 특권층이 존재의 위계를 주장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모든 신자들을 사실상 성직자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 간에는 어떠한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세례, 복음, 그리고 믿음을 통해서 누구에게나 성직자의 신분이 주어지는 것이다.”

▲ 강의 맺는 말 자료

사실 루터는 <독일 그리스도인 귀족들에게> 고했지만, 그 원리는 보편적일 수밖에 없었다. 루터가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외침은 농노를 비롯하여 신분제 사회에서 ‘꿇고’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에게 “만인제사장”의 권위를 주장할 근거가 되었다.

특히나 중세 말기 상인, 공인, 행정가들을 중심으로 자유독립도시를 형성하고 살아가던 수많은 부르주아(Bourg로 둘러싸인 독립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시민’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에게 종교개혁의 외침은 큰 호응을 얻었다.

사실 제 아무리 훌륭한 사상이라도 호응하는 이가 없고 이를 유지해갈만한 물적 토대가 없으면 지속되기 힘든 법이다. 개신교 종교 사상이 유럽을 거쳐 미국, 그리고 한국에까지 이르는 동안 힘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근현대(modern)라는 새로운 사회를 일구어갔던 부르주아들의 의미 추구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하나님 앞에 만민이 평등함을 외쳤고, 부르주아들은 근대 법치 민주사회를 만드는데 이 사상을 주요한 근거로 삼았다.

혁명, 맞다. 적어도 위 아래로 보던 인간관계를 신앙적, 법적 평등권을 갖는 수평적 존재로 응시하게 했으니까. 인간 사이에는 언제나 마주 보아라. 이것은 성서가 창세기로부터 증언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지어졌던 문명을 제대로 돌려놓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근현대 역사를 돌아볼 때 우리는 ‘만인’이 언제나 ‘만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인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많았다.

인종적으로는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이, 산업 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국가적으로는 경제수탈의 대상이 되었던 피식민 국가들은 결코 ‘만인’의 범주에 들지 못했다. 그러면 ‘여성’은 어떠했을까? (편집자 주:강의전체중 앞부분임, 이어 기사화 예정) 


박동현 기자  p76501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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