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밥값 못 줘” 최저임금 오르고 실제임금 줄어든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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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밥값 못 줘” 최저임금 오르고 실제임금 줄어든 역설
  • 박동현 기자
  • 승인 2018.01.0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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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상여금 등 기본급 포함 편법 무기계약직 “연봉 300만원 줄었다” 빵집, 점주 빵 굽고 알바 매장 관
▲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으로 올해 1000여 개의 주유소가 셀프주유소로 전환할 전망이다. 사진은 7일 서울의 한 셀프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임금 올려줄 업주 영세상인 많아, 조금씩 꾸준히 올려야 부작용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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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 D화장품사는 기본급여 포함 항목을 바꿔서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피해 갔다. 이 회사는 3개월에 한 번씩 지급하는 자기계발비 15만원 중 5만원과 매달 지급하던 식대 10만원을 기본급여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 회사 직원 강모(31)씨는 “정부가 올려주라는 금액을 이미 주던 돈으로 대체하려는 속셈이 뻔히 보이지만 딱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주의 부담이 커지자 이 부담을 근로자에게 떠넘기거나 회피하는 등 각종 편법이 빈발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의 A학원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제공하던 저녁식사를 이달부터 중단했다.

이 학원은 오후 4~10시에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위해 시중가격 7000원 가량의 도시락을 매일 배달시켜 주었다. 그러나 인건비가 오르자 자비로 저녁을 해결하라고 통보했다. 아르바이트생 박모(21·경기도 고양시 백석동)씨는 “월급 인상 액수보다 저녁값 지출 부담이 더 커졌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내 급여가 오히려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한 무역회사에서 무기계약직 사무원으로 근무하는 강모(23)씨는 상여금이 줄었다. 회사에서 연 400% 주던 상여금을 200%로 줄이고 나머지 200%는 기본급에 포함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 상여금은 법적 의무가 없는 지출이다.

법이 강제하는 최저임금 수준을 지키는 한 근로자들은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상여금 정책 조정으로 강씨의 연간 급여는 300만원 가까이 줄어들게 됐다. 강씨는 “임금 인상 정책으로 임금이 하락하게 생겼는데 구제책이 전혀 없다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 분야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도덕적 해이’를 빚고 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는 이달부터 인상된 최저시급을 적용해 경비원 월급을 기존 180만원에서 210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입주자 회의를 거치면서 189만원으로 최종 책정했다.

정부가 월 급여 190만원 이하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에 한해 일자리안정자금으로 1인당 13만원을 지원하는데 이 자금을 받기 위해서다. 오른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190만원이 넘기 때문에 결국 근무 중 쉬는 시간을 늘려 근로시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제빵업계에선 사장과 알바생 간에 업무 역전 현상이 생긴 곳도 있다. 경기도의 한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는 지난해 12월부터 빵 굽는 일을 배워 왔다. 제빵사에게 지급하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문제는 점주가 주방에서 종일 빵을 굽는 데 몰두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소비자 응대와 매장 전반 관리를 아르바이트 직원이 맡게 됐다. 이 점주는 “알바생이 점주만큼 책임감을 갖고 매장을 관리하기는 어려운데 손님이 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기업인도 할 말이 많다. 서울 강동구에서 건축 자재상을 운영하는 신모(47) 사장은 “영업이익이 많이 남는 업종이라면 모를까 사장조차 겨우 인건비 정도를 버는 업종에서는 급격한 인상률을 곧바로 적용하면 가게 문을 열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생존을 위한 자구책 차원에서 비용 떠넘기기 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전문가들은 각종 부작용과 편법이 등장하는 이유를 미흡한 정부 역할에서 찾는다. 최저임금 정책의 속성상 ‘정부 기여분’이 없고, 그러다 보니 시장의 반발이 나온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 인상 정책은 누군가 돈을 내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내는 사람에겐 비용일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비용을 지급하는 사람이 여력이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득이 충분히 많은 이의 돈으로 소득이 재분배돼야 하는데 최저임금제도는 소득이 높지 않은 계층의 돈을 거둬 더 낮은 계층에 주는 문제가 있다”며 “영세 상공인이나 자영업자에게 피해가 가는 제도라면 정책 설계와 방향이 옳지 않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은 조용하면서 꾸준하게 인상하는 게 정답인데 정치적 쟁점화되면서 사용자들이 지레 겁먹고 고용을 줄이고 기계화에 나서는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되짚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제 도입과 시장의 반작용을 거치면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점에 대해선 정책 설계 과정을 지적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논의 자체가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정치적 거품’을 내포한 채 시작됐다”며 “실제 입안 단계에서는 정치적 프로세스를 객관화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 과정이 생략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적 프로세스의 객관화란 노동시장에 대한 통계치, 영향 분석 등 정밀한 데이터를 놓고 노동자와 사용자가 함께 만족할 만한 인상 범위(Range)를 정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문가들의 집단지성 리더십이 반영되지 못하면 정치인들이 마치 과도하게 마이신을 처방하는 것처럼 급격 인상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22268844 박태희·김도년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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