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7일, 돈에 무릎 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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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7일, 돈에 무릎 꿇다
  • 박동현 기자
  • 승인 2018.08.11 2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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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도림교회로부터 시작되었던 교회 세습의 과정이 명성교회에서 완벽하게 1. 신앙의 상업화 및 상품화 2. 교회의 기업화 그리고 3. 개 교회의 신격화라는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 홍인식 목사 (순천제일교회)

아래는 홍인식 목사(순천중앙교회)의 페이스 북 글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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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를 결의한지 꼭 80주년이 되는 올해 2018년 우리 교단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총회 재판국은 다시 한 번 부끄러운 결의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명성교회의 불법적인 세습을 유효하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우리 총회 헌법 28조 6항은 명백하게 세습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사임(사직) 또는 은퇴하는 위임(담임)목사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직계비속 배우자는 후임으로 청빙할 수 없고, 해당 교회 시무장로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도 청빙할 수 없다.

그런데도 헌법을 무시하고 명성교회의 세습을 유효하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80년 전 1938년의 결의가 권력에 굴종 한 것이라고 한다면 80년 후 2018년 8월 7일의 판결은 돈에 굴종한 사건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2018년 8월 7일 판결은 한국 교회가 돈의 우상에게 무릎을 꿇은 사건이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권력에도 무릎 꿇고 돈에도 무릎을 꿇은 치욕적인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103회 총회의 교회 표어가 “개혁하는 교회, 민족의 희망”입니다. 권력에 무릎 꿇고 돈에 무릎을 꿇는 교회가 개혁하는 교회일까요? 그리고 그러한 교회가 과연 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의 추함
오늘 우리는 신사참배 80주년과 '세습유효 판결'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습을 철저하게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세습 문제에서 드러내는 명성교회의 추한 모습이 그 교회만의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세습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왜 명성교회에 대해서만 이렇게 난리를 합니까?”

한국 사회에서 교회 세습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입니다. 합동측 충현 교회의 문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충현 교회가 한국교회 최초의 세습 교회는 아닙니다. 그 이전에도 주목할 만한 세습의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1973년의 도림교회, 부평교회(1980, 감리회)와 길동교회(1986, 예장합동) 등의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후에 많은 교회들의 세습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습과정을 통하여 ‘교회론’이 변형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1973년 도림교회로부터 시작되었던 교회 세습의 과정이 명성교회에서 완벽하게

1. 신앙의 상업화 및 상품화

2. 교회의 기업화 그리고

3. 개 교회의 신격화라는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80년 전 신사참배를 결정했던 사람들의 변명이 “교회의 안정과 유지”였던 것처럼 오늘 세습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변명도 똑 같습니다. “교회의 안정과 발전 그리고 유지”입니다.

교회의 목적이 마치 기업의 목적인 “이익창출”처럼 “안정과 번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자체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신격화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유지를 위해서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 자체가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언제든지 세울 수도 폐할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명성교회는 복음의 상품화, 교회의 기업화 그리고 특정한 인물을 정점으로 하는 개 교회의 신격화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명성교회의 세습의 문제를 이렇게 반대하고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유독 ‘명성교회 만’ 가지고 이런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성교회는 한국 교회의 세습의 역사와 그 과정에 의한 신앙의 상업화와 상품화를 거쳐 교회의 기업화의 정점에 서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명성교회 사건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의 실체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명성교회 세습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반대 운동을 통하여 나도 모르게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대형화와 성공을 향한 욕망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권력과 돈의 힘에 무릎을 꿇고 살아가고 있는 한국 교회들의 모습과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 그리고 나 개인의 실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명성교회 세습 반대 운동이 우리들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그 교회로만 투영하여 마치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은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의 실체, 교회의 대형화와 또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권력과 돈과 목회자와 교회와 신학대학 그리고 관련 모든 기관들의 결탁관계의 실체들을 우리는 통렬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의 실제적인 모습을 보고 회개하고 거기서부터 돌이켜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만들어가야겠다는 결단과 행동 그리고 운동이 될 때 명성교회 세습 반대 운동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 운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수천 년 전에 죄악 한가운데서 아무런 가책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유다를 향하여 회개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돌이키지 않는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의 징벌을 외쳤습니다.

오늘도 우리들의 귀에 예언자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우리 자신을 스스로 정화하지 못함으로서 주님의 징벌이 내릴까 두렵습니다.

“많은 집들이 반드시 황폐해지고, 아무리 크고 좋은 집들이라도 텅 빈 흉가가 되어서, 사람 하나 거기에 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열흘 갈이 포도원이 포도주 한 바트 밖에 내지 못하며, 한 호멜의 씨가 겨우 한 에바 밖에 내지 못할 것이다.”(5:9~10)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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