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종착지,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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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종착지,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
  • 박동현 기자
  • 승인 2020.09.01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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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은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오묘하다고 생각된다. 만일 천국에 휫필드 동생을 전도한 상급이 존재한다면 휫필드도 헌팅던 백작부인과 같이 그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란 생각들이 지배적일 것이다.

죠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라 하면 모르는 그리스도인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설교가요 부흥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1714년 12월 16일 글로스터(영국 웨일즈 가까운 도시)에 있는 벨이라는 여관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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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수년 전 영국을 방문했을 때 이 여관을 방문했던 감동적인 순간이 떠오른다. 1740년 이후 휫필드가 미국 교회에 끼친 영향은 1735년 제1차 대각성 운동을 능가하는 제2차 대각성 운동이었다.

그는 미국을 일곱 차례 방문하였으며, 대서양을 일곱 번이나 건너는 선교의 열정은 그가 34년간 18,000회 이상의 설교를 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이렇게 대단한 복음전도자에게도 취약점이 하나 있었으니,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면서도 정작 자기 친동생은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완악했던 휫필드의 동생이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날, 놀랍게도 그를 천국으로 인도한 한 주인공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셀리나 헌팅던 백작부인(Selina, Countess of Huntingdon)이란 여인이었다. 이 부인은 18세기 조지 윗필드,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형제를 후원했던 주인공이자 복음을 위해 자신의 재산과 명예를 다 바친 헌신적인 여성이었다.

백작부인은 당대 복음전도자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귀족 사회에 복음을 전했고 별세 할 때까지 63개의 예배당을 세우는 등 영국 복음주의운동 확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죠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 광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사진 :구글)

그녀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로 대화를 진행하다가 마침내 휫필드 동생의 회심을 이끌어낸 대단한 복음전도자였다. 그것도 그가 죽기 하루 전날 말이다.

이런 일들을 보노라면 우리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은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오묘하다고 생각된다. 만일 천국에 휫필드 동생을 전도한 상급이 존재한다면 휫필드도 헌팅던 백작부인과 같이 그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란 생각들이 지배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잘못된 고정관념임을 아는가? 요한복음 4:35~38절 말씀을 보자.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뭐라고 되어 있나?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따로 있지만, 수확될 때는 모두 함께 즐거워하게 된다고 하지 않았나! 예수께서 사마리아 동네에 와서 우물가에 찾아온 불쌍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시자 그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이 일에 제자들은 한 것도 없고 동네 사람들 밥만 축냈음에도 추수 일에 참여했다고 말씀하고 있고, 이전에 노력한 사람 또한 따로 있음을 시사하신다.

그렇다. 비록 열매를 딴 것은 헌팅던 백작부인이지만, 친동생의 구원을 위해 기도와 권면으로 씨를 뿌리고 물을 준 이는 휫필드였다. 당연히 천국에서 함께 기쁨에 동참하게 하실 것이 틀림없다.

우리 큰 아버지의 일만 봐도 그렇다. 7남매 중 유일하게 예수님을 영접한 아버님의 간절한 기도와 권면으로 삼촌 외엔 모두가 천국 길을 가셨거나 지금 가고 계신다. 내가 유학을 다녀온 후 2005년쯤 되던 때였다.

암으로 수년 간 고생하시던 큰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분은 일곱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성격이 포악하고 악한 짓들을 많이 하고 사신 분이시다. 그래서 내 기억으로는 큰 아버지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천국보다는 지옥에 합당한 사람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자정쯤 부친을 간호하던 막내 사촌동생이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지금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고 물었더니 “지옥이 정말 있냐? 천국은 있는 거냐?”고 물으신단다.

그리곤 자기가 감당할 수 없으니 형이 좀 내려와 달라고 사정했다. 용인서 대구까지 자정이 넘은 시간에 운전해가다가는 안 그래도 잠이 많은 내가 큰 아버지보다 먼저 천국 갈 가능성이 많았다. 그래서 자고 일어나면 대구에 있는 동생 목사와 아버지를 보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수님 믿기로 결단하게 하고 영접기도까지 따라 하시게 한 후 주변 교회에다 부탁을 드리고 왔다는 것이다. 참 놀랍고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우리 큰 아버지가 예수를 믿고 천국백성이 되시다니!’ ‘Unbelievable!’ 그 자체였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 놀랍다. ‘이왕에 천국백성으로 예정하셨으면 진작에 예수 믿고 좀 잘 살다가 가게 하실 것이지, 우리 하나님 참 얄궂은 분이셔!’ 그런 맘을 가지면서도 내심 기쁘고 감사했다. 물론 지옥백성으로 단정해버렸던 나의 악한 마음을 회개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후 큰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대구에 내려가 장의차를 타고 영천 묘지로 가는 동안 하관 예배를 집례하실 목사님과 맨 앞자리에 같이 동행하게 됐다.

동생이 맡겼던 바로 그 교회 담임이셨다. 신대원은 후배신데 연세는 더 많으셨다. 그분과 대화를 하면서 난 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큰 아버지를 천국으로 인도한 결정적 공로자는 누구일까? 물론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과 선택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분을 그리스도께로 돌이키게 간접적으로 역할을 한 분이 누굴까 생각해보니 우리 아버지셨다. 형님의 불쌍한 영혼을 위해 일평생 기도하고 권면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례 목사님의 얘기를 듣고 보니 내가 알지 못한 새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 더 존재했다. 우리 큰 아버지는 항상 술에 취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해대고 온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문제 어른 중의 문제 어른이셔서 동네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한다.

하지만 그 영혼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목사님과 성도들이 오랜 세월 중보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필자 신성욱 교수

조카인 나도 큰 아버지를 위해 기도한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인데, 전혀 알지 못하는 분들이 그 불쌍한 영혼을 위해 장시간 기도하셨다는 사실이다. 순간 너무도 부끄러운 나머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죄스러움이 몰려왔다.

동시에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아,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게 신비롭고도 오묘한 거로구나! 한 영혼을 향하신 우리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놀랍도다!’

그랬다. 일평생 나쁜 짓만 골라가면서 행하고 사셨던 우리 큰 아버지는 그렇게 천국으로 훌쩍 떠나셨다. 한 편으론 허탈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기쁘기 짝이 없었다.

그 일로 인해 난 두 가지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됐다. 사람의 외모나 행위를 보고 그 영혼의 종착지를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사실 하나와, 한 영혼이 회심하여 천국백성 되기까지 씨 뿌리고 물주고 수확함에 땀 흘리고 수고한 숨은 공로자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 말이다.

수십 년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었음에도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영혼이 있는가? 기도응답의 왕 뮬러도 한 친구의 영혼을 위해 52년간이나 끈질기게 기도했다지 않은가.

비록 다른 이를 통해서 열매가 맺혔다 하더라도 그날엔 씨 뿌리고 물을 준 나도 즐거움과 칭찬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영혼 수확을 위한 기도와 복음 증거에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자. 주변에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작은 것부터 구체적으로 실천하자.

필자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공부했음, University of Pretoria에서 공부했음,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음,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언어학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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